• 시인 한용운의 세계 - 송 욱 교수 한용운전집 1
    글쓴이 운영자

    날짜 14.01.14     조회 263

    시인 한용운의 세계


    송 욱 교수 한용운전집 1




    1. 우리 상황과 <님의 침묵>

    <님의 침묵>이 간행된(一九二六)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만해 한 용운 하면, 우리는 으레 이 시집 한 권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그 까닭을 살필 필요가 있다.
    첫째로, 우리는 <님의 침묵>을,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로서 탄복하며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시집은 3·1 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한 저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민족의 독립을 슬퍼하고 갈망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느끼면서 찬탄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셋째로, 매우 깊고 넓은 불교 철학 즉 팔만대장경에 실려 있는 내용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국말로, 그리고 시(詩)라는 형식을 통해서 풀이하고 결정(結晶)시킨 것이 바로 이 시집인 까닭이다.

    이렇게 보면, 이 시집의 독자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님은 과연 누구일까?」하는 의문도 곧 풀리고 만다. 「님」이란 애인이요, 불교의 진리 그 자체이며, 한국 사람 전체를 뜻한다. 그렇다. 이 시집의 주제(主題)는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다. 중생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시집 <님의 沈默>에서

    일제 시대가 아닌 현재의 우리는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이 구절을 「한용운의 님은 민주적으로 통일된 한국이다.」 이렇게 고쳐서 읽어야 한다. 맛치니는 이태리의 민주 통일을 위하여 싸운 혁명가였으며, 만해는 일제에 대항하여 싸운 독립 투사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민족은 아직도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민주와 통일은 아직도 <남의 침묵>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즉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들이다...... 이 시집의 현대성(現代性)은 이런 점에도 있다.

    2. <佛敎大典>에서 <님의 沈默>으로

    시집 <님의 침묵>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만해가 8백 페이지에 이르는 대저(大著)인 <불교대전(佛敎大典)>을, 3·1운동을 5년이나 앞선 1913년에 35세라는 젊은 나이로 저술한 불교학의 대가였음을 아는 이는 매우 드물다. 이 책은 그 「범례」가 말하고 있듯이 대장경(大藏經) 중에서 일천여 부를 참조하여 중요한 구절을 가려 내어 분류하고 체계화한 불교사상(佛敎思想)의 요약이다. 팔만대장경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고 그것을 대저(大著)로써 증명한 젊은 한용운은 당시 불교학자로서도 최고봉인 동시에 천재였다. 이 사실은 <님의 침묵>과 그 저자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항시 되풀이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절세(絶世)의 석학(碩學)이었던 장년기(葬年期)의 만해는 3·1운동이라는 민족 전체의 독립 운동의 지도자가 되어 혁명가로서 행동하였고, 그 결과로 3년 만에야 겨우 감옥살이에서 풀려 나왔다.

    이제 만해는 대선사(大禪師)·석학(碩學), 몇 해의 감옥살이를 겪은 독립 투사, 이러한 모든 것을 겸한 인물이다. 그런데 몇 해가 채 지나기도 전에 그는 다시 한번 놀라운 변신(變身)을 보여준다. 그는 시집 <님의 침묵>의 원고를 완성하고(1915, 46세), 다음 해에 책으로 내놓음으로써 20세기에서 가장 깊은 사상을 표현한 한국 시인임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수수께끼에 직면하게 된다. 어떻게 한 인간이 대선사, 불교학의 최고봉, 혁명의 지도자, 그리고 위대한 현대 시인을 겸할 수 있는 것인가. 더군다나 그가 살아 온 시대는 망국(亡國)의 19세기말에서 일제 시대의 말기인 20세기 중엽까지가 아닌가! 즉, 그는 우리 역사에서도 가장 험악한 암흑기를 산 인물이다.

    결국 모든 위대한 인물이 그러한 것처럼 만해의 경우에도 모든 수수께끼는 하나의 놀라운 대답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위대한 종교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 운동이라는 속세(俗世)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석학일 뿐만 아니라 대사상가였다. 이 때문에 그는 학자로서의 개성(個性)을 3·1운동이라는 열화(熱火) 속에서 예술가의 개성으로 변화시키켜, 마치 용(龍)처럼 <님의 침묵>이라는 황금 혹은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역사에도 드문 암흑기에 살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세상을 휘황하게 비추는 횃불을 항시 들고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만해는 보통 사람을 절망시킨 일제하(日帝下)라는 지옥을 오히려 황금을 빚어 내는 도가니로 만들었다. <불교대전>은 3·1운동, 즉 일제의 굴레를 태우려는 겁화(劫火) 속에서 <님의 침묵>이란 황금 꽃다발로 이변(異變)하였다. 따라서, 이 시집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나 두려워할 수 있는 대장경이기도 하다. 「님」이 불교의 진리를 말한다고 함은 바로 이런 뜻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이 시집은 국민학교 어린이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고, 일세(一世)의 석학도 때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이 시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변이며, 또한 읽는 이에게도 어떤 이변을 빚어 내니까 말이다.

    만해는 사상·행동·예술, 이 모든 면에서 절세의 천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그와 비슷한 인물이 있는 것일까? 간디가 그와 같은가? 간디는 독립 투사였지만 시인은 아니었다. 타고르가 그와 비슷한가? 타고르는 시인이지만 독립 투사는 아니다. 그러면 만해는 간디와 타고르를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한 인물인가? 설령 간디와 타고르를 합쳐 보아도 <불교대전>의 저자와 같은 석학이 나오지 않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해 자신이 <님의 침묵>에서 타고르를 시 한 편을 통하여 간단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이리라.

    아마도, 장차 이 나라에 대선사가 나타난다면 그는 만해에서 못마땅한 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는 만해가 대선사만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장차 대시인이 나온다면 그도 만해에서 결점을 찾아 낼지도 모른다. 이는 자라는 점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이도 역시 만해가 석학만이 아닌 까닭으로 인해 가질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시집 <님의 침묵>만이 아니라 만해 자신이 하나의 이변(異變)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가 남긴 행적(行績)과 철학, 그리고 예술이 강렬하고 「현대적인 개성」을 발산하고 있는 동시에 「영원히」우리 민족과 문화 전통을 비추는 광명이며, 위대한 이변이라는 사실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3. 역사 참여와 「님」미학(美學)

    만해는 <불교대전>을 낸 1914년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한 1925년 사이에 문체(文體)상으로 일대혁명일 이룩하여 사상뿐만 아니라 표현의 형식에서도 거의 별세계(別世界)로 접어들었다.

    「부모소생(父母所生)」의 신(身)을 관(觀)하매 피십방허공중(彼十方虛空中)에 일미진(一微塵)을 취(吹)하여 약존약무(若存若無)함과 담담(湛湛)한 거해(巨海)에 일부구(一浮 )가 유(流)하여 기멸(起滅)을 종(從)함과 같으니라.」

    선사의 설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束縛)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大解脫)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드렸습니다.
    -------- 시집 <님의 沈默>에서

    물론 불경을 번역한 한 구절과 시를 비교함은 좀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대전> 역시 시처럼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불교대전>은 한문에 토를 달아 그것을 우리말의 문장법에 따라서 고쳐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에서 인용한 구절을 다시 번역해 본다.

    「부모가 낳은 몸을 보면, 어느 쪽을 향해도 가없는 저 허공 중에서 바람에 날리는 한 알 티끌이 있는 듯 없는 듯함과 같으며, 깊고 넓은 바다에서 한 조각 물거품이 물결을 따라서 일고 꺼지고 함과 같다.」

    우리 육체는 바다에 뜬 물거품처럼 물결을 따라, 즉 인연(因緣)을 따라서 일고 꺼진다는 생각은 「사랑의 줄을 끊으라」는 선사의 말과 같다. 그러나 만해는, 선사는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다고 비웃는다. 그렇다면 만해는 불경을 부정하고 있는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실상 우리 육체는 <불교대전>의 한 구절을 따르면 있는 듯하고 없는 듯한 것(若存若無)이지 선사의 설법처럼 무(無)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만해는 참된 무, 혹은 공(空) 즉 「대해탈(大解脫)」은 존재(存在) 즉 「속박(束縛)」에서 얻는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만해는 「님」 즉 민족을 사랑하는 줄을 곱드려서 3·1 운동을 영도하여 오랜 감옥살이까지 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만해는 사회참여(社會參與)의 불교를 부르짖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만해의 정신은 다음과 같은 법화경(法華經)의 정신을 목숨을 걸고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원컨대 이 공덕을
    모든 것에 펼치고
    우리가 뭇사람과 더불어
    모두 다 함께
    불도를 이루고자.」(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결국 만해는 일제의 노예가 된 민족을 해방시키지 않고 무슨 불교가 있을 수 있느냐고 굳게 믿은 것이다. 따라서, 그는 역사의 추진력(推進力)으로서의 무(無), 즉 대해탈을 몸소 지닌 인물이었다. 만해 정신(萬海精神)의 현대성(現代性)은 바로 여기에도 있다.
    그러나, 만해는 존재와 역사 속에 갇혀만 있지는 않은 자유인이기도 하다.

    꿈이라면
    사랑의 속박이 꿈이라면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웃음과 눈물이 꿈이라면
    무심(無心)의 광명(光明)도 꿈입니다.
    일체 만법(一切萬法)이 꿈이라면
    사랑의 꿈에서 불멸을 얻겠습니다.
    --------시집 <님의 沈默>에서

    존재는 공(空)을, 표현(表現)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사랑의 꿈에서 불멸을 얻겠습니다」) 떠나지 않는 것이 만해의 미학(美學)이다! 그의 미학에서는 모두가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수록 표현되지 않은 깊이, 즉 공을 지닌다. 그리고, 논리는 비논리(非論理)를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님의 침묵>은 웅변(雄辯)일수록 어디까지나 침묵(沈默)이다! 우리가 <님의 침묵>을 읽으면서 표현이 쉬우면 그러할수록 어리둥절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만해는 강렬한 역사 참여의 정신과 아울러 자기의 미학을 창조하였다. 이는 그가 아주 드문 위대한 인물임을 드러낸다. <님의 침묵>의 매력은 여기에도 있다. 만해에 있어서는 서산 대사(西山大師)의 전통과 석굴암(石窟庵)의 미학이 함께 살아 있다. 그는 불교 미학을 「우리말」로써 세운 첫 번째의 대선사임에 틀림없다. 이는 5천년 이 나라의 역사에 처음 나타난 이변(異變)이요 신변(神變)이다! 유구한 우리 불교 전통은 만해에서 찬란한 불멸의 꽃을 피웠다.

    우리말을 표현 수단으로 삼은 신문학은 한문과 함께 사상과도 그만 작별하고 말았다. 우리 신문학은 사상이 없는 문학이 되고 말았다. 오직 한 가지 예외가 ><님의 침묵>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장차 이 나라의 문학사(文學史)뿐만 아니라, 사상사(思想史)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끝내 차지하리라.


    목록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

    현재페이지 1 / 1

    NO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19 한용운에 있어서 '님'은 누구인가? - 전보삼(만해기념관관장 신구 운영자 14.01.14 461
    18 시집 「님의 침묵」을 읽고 - Theresay Hyun(불문학·캐나다 요크 운영자 14.01.14 248
    17 시집 「님의 침묵」을 읽고 - 이 경(시인) 운영자 14.01.14 278
    16 내가 좋아하는 만해시 운영자 14.01.14 373
    15 남한산성과 님의침묵 - 이경규(동서울대학 광고디자인과 교수) 운영자 14.01.14 237
    14 시인 한용운의 세계 - 송 욱 교수 한용운전집 1 운영자 14.01.14 264
    13 '님의 침묵' 시해설 - 군말 - 운영자 14.01.14 419
    12 '님의 침묵' 시해설 - 님의 침묵 - 운영자 14.01.14 969
    11 '님의 침묵' 시해설 - 알 수 없어요 - 운영자 14.01.14 384
    10 '님의 침묵' 시해설 - 나의 길 - 운영자 14.01.14 257
    9 '님의 침묵' 시해설 - 예술가 - 운영자 14.01.14 210
    8 '님의 침묵' 시해설 - 나룻배와 행인 - 운영자 14.01.14 612
    7 '님의 침묵' 시해설 - 당신을 보았습니다 - 운영자 14.01.14 306
    6 '님의 침묵' 시해설 - 선사의 설법 - 운영자 14.01.14 303
    5 '님의 침묵' 시해설 - 찬송 - 운영자 14.01.14 320
    4 '님의 침묵' 시해설 - 수(繡)의 비밀 - 운영자 14.01.14 185
    3 '님의 침묵' 시해설 - 생의 예술 - 운영자 14.01.14 186
    2 '님의 침묵' 시해설 - 사랑의 끝판 - 운영자 14.01.14 406
    1 '님의 침묵' 시해설 - 독자에게 - 운영자 14.01.14 274
     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