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I. 한용운 민족정신의 본질

    만해 한용운은 자유주의적 민족사상가로서 그리고 불교개혁 사상가로서 한국 근대사상사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특이한 존재이다. 불교개혁과 민중 불교의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 (1913년), <불교대전> (1914년)에서 불교의 정신을, 3.1독립 선언의 사상적 근거인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1919년)에서 독립정신을, <님의 침묵> (1926년) 및 후기의 각종 평론설에서 문학정신을 다루고 있는 한용운사상의 본질적 측면은 다름아닌 민족적정신에 입각한 자유론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그의 자유관은 그의 사상의 핵심적 요소로서 전생애를 통해 일관된 기본원리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고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사혜와 동하고 평화가 무한 자는 최고통의 자라 압박을 피하는 자의 주원의 공기는 분묘로 화하고 쟁탈을 사하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느니 우주의 이상적 최행복의 실재는 자유와 평화라. 고로 자유를 득하기 위하여는 생명을 혹모시하고 평화를 보하기 위하여는 희생을 감수당하느니 차는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일지로다.

    그러나 자유의 공례는 인의 자유를 침치 아니함으로 한계를 삼느니 침략적 자유는 몰평화의 야만 자유가 되며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재하니 평등은 자유의 상적을 조함이라. 고로 억압적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진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보하고 지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반할지라 자유여 평화여 전인류의 요구일지로다."

    자유사상의 핵심적인 설명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의 첫장 개론 제1절에서 이미 잘 설명되어지고 있다.
    한용운 자유를 만유의 생명, 인간생활의 참다운 목적등으로 인식하여 개인, 사회, 국가, 인류가 지향해야할 본질적인 요소 즉 당위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시에 민족정신을 그 시대의 문제의식으로 대두된 중요 개념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인식도 자유의 개념을 바탕으로 파악할 때 좀 더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근대 서구 자유사상에서 그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고 그가 지금까지 체험하고 쌓았던 경험의 축적에 의해서 그 나름의 현실 인식을 통하여 그가 창출해 낸 종교적 성격이 강한 일면을 지닌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유적 특성이기도 한 자유정신은 인간본질의 발견에서 비롯하고 있으며 불교적 측면에서는 불성의 자각이 그 뿌리를 하고 있다. 佛性의 自覺은 자기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구현하는 길이다. 의타적 사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自性本來의 眞面目이 명명 백백하게 발로되는 佛性具顯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해 한용운의 자유사상은 서구 근대사상의 자유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가 있기도 하다.

    Freedom of 나 Freedom from과 같은 "--에 대한 자유", "--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자재하다는 스스로 자유자재하다는 정신적인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자유관은 동시대의 지식인들과는 크게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교적 인식론에 입각한 그의 자유관은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며 (一切唯心造), 결국 現象界란 우리 마음의 投影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 마음의 本體는 一體의 것에 무차별하고 청정하여 변치 않고 不生不滅 不垢不淨하며 멀리 감각기관과 그 대상을 초설하여 고요하면서도 항상 작용하는 것을 "眞如"라고 말하며 이 "진여"는 불교에서 영구히 변하지 않는 불변의 뜻으로 一切 萬有의 진성을 뜻하며 "眞"은 허망하지 않음에 "如"는 여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여는 인간의 본체로서 현상계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 자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한용운은 근대 서구 사상 특히 Kant의 인식론과 베이컨의 자유론을 수용하여 불교사상과 비교 고찰하고 있다. 즉, 나의 진정한 자아를 나의 육안으로 볼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도덕의 이치로 미루어 생각하면 엄연히 멀리 현상위에 벗어나 그 밖에 있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진정한 자아는 반드시 항상 자유로와서 육체가 언제나 필연의 법칙에 매여 있는 것과는 같지 않음이 명백하다.

    "자유 의지가 선택하고 나면 육체가 그 명령을 따라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의 자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이것으로 생각하면 우리 몸에 소위 자유성과 부자유성의 두 가지가 동시에 병존하고 있음이 이론상 명백한 터이다." 라고 조선불교 유신론에서 밝히고 있다.

    한편 그는 양계초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 말씀에 소위 진여라는 것이 있는데 진여란 곧 칸트의 진정한 자아여서 자유성을 지닌 것이며 또 소위 무명이라는 것이 있는데 무명이란 칸트의 현상적인 자아에 해당하는 개념이어서 필연의 법칙에 구속되어 자유성이 없는 것을 뜻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칸트가 말하는 眞我와 불교의 眞如는 인간의 本體로서 현상계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것이며 이러한 자신의 自我를 올바르게 깨달음으로써 궁극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칸트를 통하여 자유, 이성, 도덕의 문제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상관 관계로 파악하여 인간의 이성이 자유인가.
    자유가 아닌가를 알려고 한다면 한갖 껍질인 몸의 현상만으로 논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불성, 도덕으로 논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도덕의 성질 또한 털끝 만치라도 부자유를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도덕적 성질은 생기는 일도 없어지는 일도 없어서 공간과 시간에 제한받거나 구속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도 미래도 없고 항상 현재뿐인 것인 바 사람이 각자 이 공간 시간을 초월한 자유권에 의지하여 스스로 도덕적 성질을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는 것이다.

    이성과 도덕이 초월적인 자유로부터 나왔다고 봄으로 인간의 이성과 도덕에도 자유와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과 도덕에 의해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는 실천적인 자유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상관 관계가 된다. 여기에서 인간의 이른바 선과 악을 향하게 되는 자유 의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것은 인간이 감성적, 자연적, 제약성 때문에 악에의 자유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無名 때문이라고 하며 칸트가 말하는 현상으로서 필연의 법칙에 구속되어 자유성이 없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마땅히 이성과 도덕에 입각한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을 행함으로써 자유를 사회적으로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기가 자기에게 부과한 도덕적 의무를 따름으로써 참된 자유의 주체가 된다는 실천적인 자유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자유의지 야말로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이라고 생각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의 자유사상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평등하게 존재하는 불교의 평등사상에 기인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즉 眞我란 평등한 것이며 現象我는 평등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현상아는 필연성에 종속하기 때문에 자유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평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상계인 현실 사회에 있어서 불평등, 부자유한 여러 문제들이 결국 깨달음의 입장에서 평등한 것이라면 사회 개혁의 필요성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이점을 그는 문명이 진화함에 따라 자유 평등이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현상계를 사회적으로도 점차 구현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즉 '자유란 남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으로서 한계를 삼는다'고 한 것이 있다. 사람들이 각자 자유를 보전하여 남의 자유를 침범치 않는다면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동일하고 저 사람의 자유가 이 사람의 자유와 동일해서 각자의 자유가 모두 수평선처럼 가지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유에 사소한 차이도 없고 보면 평등의 이상이 이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서 문명의 정도가 날로 발달하게 되면 자유와 평등에 의하여 세계는 한 집안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같이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현상계도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지리라고 확언하고 있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한용운은 인간의 본질로 파악되는 내면적 자유가 사회적으로 표현될 때에는 각 개인이 서로의 자유권을 존중하여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자유를 침해할 때에는 자기의 자유를 보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 성질이란 그 자유가 침해받을 때에는 투쟁적 성질을 갖는다. 그의 3.1 독립정신의 근거이기도 한 이점이 그의 투쟁적 삶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상으로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서로 혼융되어 이상적인 이념으로서 추구되었는데 실제적으로 자유와 평등은 서로 상호 관계에 있기도 하다. 또 한용운은 Kant와 양계초의 자유에 대한 개념을 불교적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다. 칸트는 개인적 자유즉 자유의 개별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만인 공유의 자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하였으며 양계초는 만인공유의 자유만이 있고 개인적 자유가 없다고 한 관점을 옳지 못하다고 지적하면서 불교에서는 개인적 자유와 만인 공유의 자유를 모두 밝혔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조선불교유신론의 불교의 성질을 설명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셋이면서 기실은 하나인데 누구는 부처가 되고 누구는 중생이 되겠는가. 이는 소위 상즉상리하고 불즉불리하여 하나가 곧 만이며, 만이 곧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부처라 하고 중생이라 하여 그 사이에 한계를 긋는다는 것은 다만 공중의 꽃이나 제2의 달과도 같아 기실 무의미할 뿐이다." 라는 지적이다.

    이와 같이 그는 자유에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자유가 있다고 보았다. 個體의 自由와 全體의 自由를 동시에 파악하며 그 양자는 서로를 보완하며 동시에 공존함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는 부처와 衆生의 관계와 같이 相卽相離의 상호 의존적 관계이기도 하다. 전체와 개체 즉 "總"과 "別"에 대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인 調和의 관계를 말한다. 즉 서로의 개별적인 자유가 존중되면서도 만인공유의 평등한 자유가 전체적인 연관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相離의 立場"만을 강조하게 되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며 또한 자유 방임주의로 흐를 수 있기도 하다. 또 "相卽의 立場"만을 강조하게 되면 사회 또는 국가라고 한 전체속에 개인의 자유는 함몰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상즉상리의 관계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조화시켜 나가려 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처럼 상즉상리의 관계로 본다면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아무리 자유스러워도 다른 일부가 부자유 스러 우면 완전히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이 앓고 있기에 나도 앓는다는 유마거사의 말과도 통한다. 이러한 정신이 바로 대승불교의 보살 정신 이기도 하다. 보살 정신에 입각한 사회관은 직접 사회로 들어와 구세의 뜻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도 개인과 사회, 국가 또는 민족과의 관계를 상즉상리의 관계속에 있는 유기적 공동체로 파악하였다.

    "사회도 한 인격이요, 국가도 한 인격이다. 사회를 구성한 개인은 사회 인격의 지체이며 국가를 구성한 인민은 국가 인격의 수족이다...... 그러므로 사회, 국가의 문명은 곧 개인의 운명이다...... 사회도 아이며 국가도 아인 까닭이다."

    한용운은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간에 있어서 철저한 동체의식을 자각하였다. 그러므로 쇠퇴한 사회에 개인의 행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요, 패망한 국가에 국민의 자유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고 그의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유관에 입각하여 그는 자유의 현실적 과제로서 일제 식민지 전기간을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정신과 자유와 평화정신을 보다 실천적으로 전개한 자유사상은 한용운의 민족정신의 본질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