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맺 는 말

    만해 한용운의 3 1 독립정신에 대하여 지금까지 논의를 살펴왔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철저한 신념에 의한 행동 철학을 살필 수 있었다. 옳은 일을 위하여는 생명까지도 무시하는 특립독행의 정신을 통하여 3 1운동의 숭고한 정신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첫번째 작업이 《유심》지를 통하여 3 1운동의 전위지 성격의 파악이었다. 지금까지는 거의 관심 밖에 머물던 만해 한용운이 창간한 《유심》지가 3 1운동사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미 이 잡지에 민족 대표들이 참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언론 활동을 통하여 세계사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동안에 논란이 있어왔던 공약삼장 부분에 대한 만해 추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를 당시 선언서 작성 작업에 관여되었던 육당이나 최린의 진술서를 토대로 새롭게 살펴보았다. 여기서 육당은 자기가 작성한 문면과 다른 문면이 있다는 진술과 만해의 내 의사와 다른 부분이 있어 내가 개정한 일까지 있다는 진술들을 토대로 만해 작성설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공약삼장이 가지는 내용의 특성을 살필 때, 그것은 불교 철학의 화엄사상의 보현행원품의 무진 연기사상이 용해되어진 부분임을 살폈다.
    다음으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 나타난 독립정신은 자유 평등 평화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여 만해 한용운의 정신이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난 명문임을 살폈다.
    옥중에서 아무런 참고 자료 하나 없이 53장의 대논문을 완성한 사실에서 볼 때, 만해가 얼마나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였으며 또 그것을 위하여 노심초사하였으면 이러한 논설을 쓸 수 있었을까를 우리는 깊이있게 살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의 정신을 통하여 불보살의 이상을, 평등정신을 통하여 진리의 큰 수레를, 평화의 정신을 구현하여 화합의 한마당을 펼치는 한용운의 독립정신의 깊이를 확인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정신이 다다를 수 있는 극치점이요, 우리들의 영원한 이상인 것이다.
    끝으로, 공판 기록에 나타난 3 1정신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었다. 추호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았던 만해의 법정 진술은 우리들의 묵은 체증을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는다. 그래서 탄허 스님은 만해를 일러 '저울추' 52)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근을 달아 올리는 저울추', 과연 탄허다운 표현이다. 훗날 일본의 두산만이 만해의 서거를 애도한 이유 53)도 그의 법정 진술이 하도 당당하여 내심 두렵기도 하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는 술회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이제 만해 한용운의 3 1 독립정신에 나타난 만해 철학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점이요, 민족의 자존을 확인하는 길이었다.

    【주】 ----------------------------------------------------------------------------------------

     1) 3 1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지도할 강력한 조직 체계의 필요성에 의하여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1919년 4월에 수립된 이 임시 정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945년 8월 해방을 맞는 그날까지 대외적으로는 대한민족의
    총의(總意)를 대표하였으며, 안으로는 항일운동의 주체 세력으로서 3 1정신을 계승하였다.
     2) 한용운이 창간한 잡지로서 1918년 9월 1일 창간호에 이어, 10월 20일 제2호, 12월 1일 제3호로 종간을 맞은 종합지의 성격을 띠는
    잡지이다. 발행소는 계동 43번지의 '유심사'였으며, 만해 한용운의 처소이기도 한 곳이다.
     3) 1912년 2월 25일 창간되어 통권 19호로서 1913년 8월 25일 종간된 잡지이다. 편집 겸 발행인은 권상로였고, 발행소는 '조선불교월보사'였다.
     4) 1913년 11월 20일에 창간되어 통권 8호로서 1914년 6월 20일에 종간된 잡지이다. 편집 겸 발행인은 박한영이었고, 발행소는 '해동불교사'였다.
     5) 1916년 4월 15일 창간되어 통권 3호로서 1917년 6월 5일에 종간된 잡지이다. 발행 겸 편집인은 이능화였다.
     6) 3 1운동 이후 법정 진술에서 만해 한용운은 서울에 온 목적을 수양에 관한 서적 편찬이라고 하기도 하였고, 《유심》지 발간을 위하여 왔다는 진술들을 하고 있다.
     7) 창간호에는 〈처음에 씀〉이라는 권두시와 〈심〉이 실렸고, 〈一莖草의 生命〉이 제2호에, 제3호에는 〈天涯의 惡路〉가 담겨져 있다.
     8) 《유심》지 3호에는 그동안 연제되던 〈生의 實現〉이 당국의 불인가로 인하여 연제치 못하니 작은 뜻을 헤아려 달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9) 김상현, 〈한용운과 공약삼장〉 - 《동국사학》19 20, 1986.
     10) 이병헌, 《삼일운동비사》, 1959.
     11) 신용하, 〈3 1 독립운동 발발의 경위〉 - 《한국근대사론》Ⅱ, 지식산업사, 1977.
     12) 홍일식, 〈3 1 독립선언서 연구〉 - 《한국독립운동사연구》3, 1989.
     13) 〈최린선생의 자서전 중 원문〉 - 《삼일운동비사》, 1959.
     14) 위의 책 p.52.
     15) 〈최린 취조서〉 - 위의 책 p.53.
     16) 위의 책 p.576.
     17) 위의 책 p.659.
     18) 《동아일보》, 1920.10.28.
     19) 《동아일보》, 1969.1.1.
     20) 김법린, 〈3 1운동과 불교〉 - 《신천지》 1946년 3월호.
     21) 최범술, 〈철창철학〉 - 《나라사랑》, 1971.
     22) 해남 대흥사를 중심으로 3 1운동에 직접 참가하여 옥고를 치르고, 그 이후에 불교계의 비밀 결사 단체인 만당(卍黨)의 당원으로 활약한 스님으로 당시를 회고한 글을 남겨 놓았다.
     23) 김관호, 〈심우장 견문기〉 - 《한용운사상연구》2, 1981.
     24) 국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1966, p.152.
     25) 위의 책 p.162.
     26) 최범술의 회고록, 〈청춘은 아름다워라〉 - 《국제신보》, 1975.3.24.
     27) 《독립신문》 제25호, 1919.11.4.
     28) 한용운, 〈조선독립의 서〉 - 《한용운전집》1, 신구문화사, 1973, p.347. 이하 《한용운전집》으로 표시.
     29) 위의 책 p.348.
     30) 위의 책 p.350.
     31) 위의 책 pp.350∼351.
     32) 위의 책 p.351.
     33) 위의 책 p.351.
     34) 위의 책 pp.351∼352.
     35) 위의 책 p.352.
     36) 위의 책 pp.353∼354.
     37) 이갑성, 《동아일보》, 1969.1.1.
     38) 《한용운전집》6 p.360.
     39) 위의 책 1 pp.253∼254.
     40) 3 1 만세 시위를 목격한 만해의 눈물과 일송 김동삼의 오일장을 치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41) 〈감방의 오물〉 - 《한용운전집》6 p.361.
     42) 위의 책 1 p.100.
     43) 위의 책 1 p.174.
     44) 한용운의 옥중에서 쓰여진 한시는 13수, 시조는 1수가 전하여진다.
     45) 《한용운전집》1 p.373.
     46) 위의 책 1 p.367.
     47) 위의 책 1 p.372.
     48) 위의 책 1 p.373.
     49) 위와 같음.
     50) 《동아일보》, 1920.10.28.
     51) 《동아일보》, 1920.12.23.
     52) 《한용운전집》6 p.379.
     53) 위의 책 p.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