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한용운과 공약삼장

    기미년 3 1 독립운동에 있어서 독립 선언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공약삼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김상현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선언서가 눈이라면 이 공약삼장은 눈동자다. 눈동자가 있어 눈을 눈답게 하듯, 공약삼장이 있어서 독립 선언서가 선언서다운 구실을 하게 하였다. 9)

    독립 선언서에 있어서 공약삼장의 비중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일제는 선언서보다도 공약삼장에 취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족 대표들이 옥중에서 이것에 대한 취조를 더욱 심하게 받은 일들이 《삼일운동비사》의 취조서에 보면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란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놓고 일제의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다. 민족 대표 전원에게 가혹한 취조를 한 사실을 공판 기록에 보면 잘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선언서에 있어서 공약삼장의 내용은 선언서 중에 선언서라고 할 수 있는 독립의지의 대강령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이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 추가설이 여러 증언과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신용하 11)와 홍일식 12)은 이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육당설을 주장하고 있다. 생생한 증언 자료를 제공하던 인사들도 하나 둘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세월의 흐름 속에 진실도 묻혀 버릴 수 있다는 안타까움에 여기서 만해 한용운의 공약삼장 작성 관계를 그와 관계되었던 관련 기록과 옥중 공판 기록 및 그동안의 자료를 중심으로 다시 살펴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함은 물론, 다시는 이런 논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기 관련 일지를 다시 한번 정리한다.
    만해 한용운의 공약삼장 추가를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 자료를 살펴보자. 먼저 최린의 자서전 13)에 보면 다음과 같은 진술이 있다.

    한용운은 불교측으로, 육당은 개인 자격으로 자주 회합하여 운동의 실현 방법과 행동 계획에 관하여 계속 토의하였다. 14)

    한용운은 독립운동에 직접 책임을 질 수 없는 최남선으로서 선언문을 짓는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니 선언문은 자기가 짓겠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나의 생각으로는 책임은 누가 지든지간에 선언문만은 육당이 짓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용운의 이의를 완곡히 거절하였다. 15)

    여기에서는 한용운과 육당, 그리고 최린이 자주 회합하였고, 행동 계획에 대하여 계속 토의하고 있고 긴밀한 유대 관계 속에 거사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최린의 취조서를 살펴보자.

    문: 최초 피고는 최남선으로부터 받은 초고를 어떻게 하였는가.
    답: 그것은 참고로 내가 가지고 있다가 한용운에게 맡겨 두었다.
    문: 한용운에게 대하여는 피고가 선언서의 취지 및 청원서의 취지와 발송의 방법을 말하였는가.
    답: 그렇다.
    문: 이 선언서는 누가 기안하였는가.
    답: 그 선언서는 최남선에게 의뢰하였으며 그 선언서의 골자는 내가 동인(同人)에게 말하였다. 16)
    최남선의 초고를 육당이 한용운에게 맡겨 두었고, 선언서의 취지와 발송 방법을 말하였고, 선언서는 최남선에게 의뢰하여 골자는 최린이 말하였다. 다음으로 최남선의 취조서를 살펴보자.

    문: 피고는 어떠한 문장을 작성하였는가. 답: 그것은 독립 선언서와 미국 대통령과 열국 대표자에게 보내는 탄원서와 일본 정부 및 일본 정치가와 조선 총독부에 제출할 청원서를 작성하였고 그 서면은 다 최린과 상의하고서 내가 기안만 하였다. 또 그 서면은 각각 한 통씩 써서 최린에게 주었다. 그런데 일본과 조선 총독부 및 일본 정치가에 보낸 문서에서는 동일한 문면이고, 미국 대통령과 각국 대표자에게 보낸 서면과 독립 선언서는 각각 다른 문면이 있다. 17)

    최남선의 취조서에는 독립 선언서, 미국 대통령과 열국 대표자에게 보내는 탄원서, 일본 정부와 일본 정치가 그리고 조선 총독부에 보낸 청원서를 육당이 다 지었다는 사실과 전자의 세 곳은 내가 지은 문면과 다른 문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독립 선언서에 내가 지은 문면과 다른 곳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그리고 한용운의 취조서에는 동년 2월 24일 최린이 선언서와 일본 정부에 보낼 청원서를 보이므로 "나는 그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용운의 공소 공판기에는 '독립은 민족의 자존성'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때 당시의 《동아일보》 신문에 '한용운의 맹렬한 독립론'이란 기사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 기사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문: 그 서류를 보고 독립에 찬성을 하였나.
    답: 그것을 보고 찬성한 것이 아니라 다소 나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어 개정한 일까지 있소. 18)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사실이 아니고서야 서슬이 퍼런 법정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육당이 자기가 지은 문면과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과 한용운이 나의 의견과 다른 문면이 있어 개정한 일이 있다는 진술을 토대로 할 때, 공약삼장이 만해 한용운에 의해 첨가된 사실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이밖에도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李甲成)의 증언 19)에 의하면 만해의 추가설은 더욱 뚜렷하다. 그리고 기미년 당시 중앙학림의 학생으로서 직접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만해의 직접 지도를 받아 활약한 범산 김법린(金法麟)의 〈3 1운동과 불교계〉 20)라는 논설에서 더욱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 더욱이 생존 시 증언을 하여 주었던 만당(卍黨) 당원으로 독립운동에 일신을 아끼지 않았던 최범술 21), 박영희 22)의 증언과 기록이 있고, 현재도 생존하여 증언하고 있는 김관호 23)의 주장을 살피면 더욱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상에서 여러 논의를 걸친 내용을 종합 정리하면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이 육당이 지은 선언서에 추가하였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독립운동사》 2권 제2편에 3 1운동 관계 기록이 나온다. 여기 제1장 3절을 보면 거사 계획의 시말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한용운은 천도교 독립 선언서에 공약삼장을 추가하였으며,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의 연설을 하고 만세를 선창하는 등 상당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24)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모의 과정을 설명하고 나아가 학생들의 동태까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종합 계획에서,

    지금 전하는 독립 선언서 뒤에 붙은 공약삼장은 한용운이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25)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독립운동사》의 자료를 우리는 가장 확실한 자료로 믿는다. 그리고 공약삼장이 갖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여 그것이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어떤 정신을 담고 있는지에 관한 연구도 이 기회에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공약삼장의 내용을 다시 한번 검토하여 보자.

    1. 금일 오인의 차거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

    2.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3.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오인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 정대하라.

    공약삼장은 내용면에 있어서 육당의 독립 선언서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독립 선언서가 적극성을 띠고 있지 못한 데 비하여, 공약삼장은 적극적이고 상당히 진취적 기상이 돋보인다. 더욱이 '자유적 정신', '정당한 의사', '광명 정대'라는 표현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最後의 一人까지 최후의 一刻까지'라는 표현은 단호함 바로 그것이다. 선언서의 문맥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러면 공약삼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공약삼장 제1절은 이것은 민족의 요구로써 오직 자유적 정신의 발로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배타적 감정의 문제가 아니고 민족의 생존 존영을 위한 정당한 요구임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의하여 살필 점은 '자유적 정신'이라는 표현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유의 개념은 서구인들이 말하는 상대적인 자유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인 개념의 자유를 말한다. 즉 해탈(解脫)의 경지를 설명할 때 걸림없는 상태, 즉 무애행을 의미한다. 자유자재한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다.
    제2절은 특히 만해의 특립독행하는 민족의식을 살피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함과, 아울러 그의 독립정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의미 구절이다. 특히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라는 표현은 불교의 무진무한의 사상을 표현하는 정신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의 불교적 연기관이 만해 특유의 시적인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독립정신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구절들과도 흡사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
    끝으로, 제3절은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광명 정대하게 하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바르고 큰 진리이므로 우리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질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또한 가장 밝은 빛으로 모든 어둠과 불의를 몰아내는 역사의 큰 힘으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의 목소리다. 만해 한용운의 독립정신이 여기에 함축되었고 여기에 다시 표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