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조선 총독 정책에 대하여

    조선을 합방한 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시정 방침은 무력 압박이라는 넉 자로 충분히 대표된다. 전후의 총독, 즉 테라우치(寺內)와 하세가와(長谷川)로 말하면 정치적 학식이 없는 한낱 군인에 지나지 않아 조선의 총독 정치는 한마디로 말해 헌병 정치였다. 환언하면 군력(軍力) 정치요 총포(銃砲) 정치로써 군인의 특징을 발휘하여 군력 정치를 행함에는 유감이 없었다.

    그러므로 조선인은 헌병이 쓴 모자의 그림자만 보아도 독사나 맹호를 본 것처럼 피하였으며, 무슨 일이나 총독 정치에 접할 때마다 자연히 5천년 역사의 조국을 회상하며 2천만 민족의 자유를 기원하면서 사람이 안 보는 곳에서 피와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이것이 곧 합방 후 10년에 걸친 2천만 조선 민족의 생활이었다. 아아, 진실로 일본인이 인간의 마음을 가졌다면 이 같은 일을 행하고도 꿈에서나마 편안할 것인가.

    또한 종교와 교육은 인류 생활에 있어 특별히 중요한 일로써 어느 나라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없거늘 조선에 대해서만은 유독 종교령을 발포하여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교육으로 말하더라도 정신 교육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과학 교과서도 크게 보아 일본말 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밖의 모든 일에 대한 학정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인은 이 같은 학정 아래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도 10년 동안 조그마한 반발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순종할 뿐이었다. 이는 주위의 압력으로 반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그보다는 총독 정치를 중요시하여 반항을 일으키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총독 정치 이상으로 합병이란 근본 문제가 있었던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언제라도 합방을 깨뜨리고 독립 자존을 꾀하려는 것이 2천만 민족의 머리에 박힌 불멸의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총독 정치가 아무리 극악해도 여기에 보복을 가할 이유가 없고 아무리 완전한 정치를 한다 해도 감사의 뜻을 나타낼 까닭이 없어 결국 총독 정치는 지엽적 문제로 취급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