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의 침묵을 감상하며
    글쓴이 님의 목소리

    날짜 21.02.19     조회 49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감상>

     

    한 동안 학교 업무와 출산으로 바빠서 시를 읽고 글을 쓰는 소중한 것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어쩌면 반복될 것 같은 만남과 이별일테지만 저에게는 임과 같아야 할 시와 글쓰기가 위 시의 임처럼 꽤나 길게 침묵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침묵은 임에게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모자른 저에게 오롯이 비롯된 것입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아름다운 것은 임이 침묵한다는 것을 화자가 똑바로 인식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임이 떠날 때, 그 순간을 상실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임이 떠난 후에 임과 함께 있었는 줄도 모르고 임의 존재를 망각하는 것을 넘어 임의 존재를 상실합니다. 그러나 위 시의 화자는 임이 떠난 후에도 임의 존재를 분명하게 붙잡습니다. 그런 화자에게 임은 결코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는 사랑의 노래가 되어 그의 존재를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낭독하고 묵상할 때마다 릴케의 한 편의 시가 떠올라서 이 자리에서 함께 소개합니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조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 속에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한국을 대표하는 明時이며 워낙 유명하지만 실제로 학교 교과서나 정규 과정에서는 그리 잘 다루지 않는 유명 중에 하나입니다. 저 또한 학교에서 이 시를 실제로 배워보거나 다루어 본 적은 없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이해하고 해석하기에 필연적으로 어렵고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이해하고 해석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않는 것이 우리의 경험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래, 자신이 경험하지 않는 것을 배우고 이해하려면 그 길을 가보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학교에서나 정규 교육과정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이유를 추측해보면 이 시를 가르치는 교사조차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의 묘미는 우리의 경험 밖에 있는 경험을 자신의 경험 범주로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는 몸부림에 있습니다. 그런 몸부림이 있어야지만 님의 침묵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내 경험 범주 밖에 있는 경험을 내 경험으로 온전히 환원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감히 말하자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우리가 흔히 자주 보는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이별을 대하는 나름 괜찮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의미와 어휘에 감동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동받는 원초적 근원에는 거룩함이라는 구분된 것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감동의 이유를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한다고 해서 거룩함을 평범한 것으로 뒤집어 놓아서는 안됩니다.

     

    제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이야기하면서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주는 조언을 떠올린 것은 님의 침묵을 온전히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겨냥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해의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하기 위해 시를 분석하고 분해하여 시를 이해의 끝판까지 몰아갑니다. 그렇게하면 시를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해의 기준은 나의 경험에 비춘 이해입니다. 그런 시들은 나를 떠나도 한 숨의 미풍에 날아가는 차디찬 티끌에 불과합니다. 그런 들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지도 못하고 나의 눈과 귀를 멀게하지도 못합니다.

    좋은 시는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없으나 그 로 살아보게끔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 시는 나를 오랜 기간 떠난 후에도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현 듯 임이 찾아 왔다고 여기게끔 하는 신비한 힘이 되어 찾아옵니다. 그런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고백이 절로 나오게끔 합니다. 그래서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노력을 위한 인내가 아니라 차라리 노력하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인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해와 노력은 살아보는 일의 의미를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논의만 더 하고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저 또한 좀 더 몸부림치는 삶을 겪은 후에 이야기를 더 해야할 것 같습니다. 힘이 있는 글을 쓰려면 글의 주제와 관련된 통념이라는 적을 세세히 찾아야 합니다. 그 후에 통념을 계속 관찰하며 그 통념이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 통념은 독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그것을 깨야만 이별 후의 만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이해하는 통념 중의 통념은 한용운은 1)불교 스님이자 2)독립운동가이고 또 여성을 사랑하는 3)일반 남성이라는 세가지 관점을 가지고 각각 분리하여 시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1)에서 임은 부처가 되고 2)는 조국이되고 3)은 사랑하는 여성인 임이 됩니다. 저는 기독교 교인으로서 이 통념을 들을 때마다 마치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 A라는 남자를 상정한 뒤에 A가 그의 아들에게는 아버지고 그의 아내에게는 남편이고 그의 친구에게는 동료라고 불리지만 같은 인물이다는 통념 중의 통념이 떠오릅니다. 이 통념은 온전히 이해만을 위한 허구적 비유이자 해석입니다. 이 통념의 심각한 문제점은 분리시킬 수 없는 것 또한 분리시켜서도 안되는 것을 분리시켜서 사고한다는 것입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1)2)3)으로 분리시켜 이해하려는 속셈을 추측해보면 남자이며 독립운동가이자 그것도 이성적 사랑을 할 수 없는 스님이 어떻게 여성적인 목소리로 지극히 이성을 염두에 둔 사랑의 목소리로 를 창작했는가에 있습니다. 그런 속셈은 전형적으로 자신의 경험밖에 있는 경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려는 노력에 기인합니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닙니다. 한 존재가 3명의 분리된 존재면서 동시에 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런 존재가 아니며 철저히 우리의 경험 밖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를 살아보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신앙이 두터운 분들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살아보려하고 분명 한계는 있지만 경험하려고 합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뿐만 아니라 한용운의 모든 작품을 접근할 때에 삼위일체를 떠올리면 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용운이 1)불교 스님 2) 독립 운동가 3) 일반 남성이라는 것은 문자처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실체로 존재합니다. 님이 떠났으나 님을 보내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는 그 존재가 가진 아름다움의 표현입니다. 1)2)3)의 아름다움이 결코 그 중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종류의 아름다움이기에 1)2)3)이 가지지 않은 속성, 1)2)3)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이해한 님의 침묵이 아니라 나름 제가 살아보고 경험한 님의 침묵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 글은 오랜만에 찾아온 임의 소식처럼 저에게 들리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이 시로 더욱 끙끙거리며 살아보면 임에게 더 좋은 소식을 듣게 되리라 소망해 봅니다.  

    • 도배방지
    • 도배방지
    목록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

    현재페이지 1 / 3

    NO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62 새 책! 『근현대 프랑스철학의 뿌리들 ― 지성, 의지, 생명, 지속 갈무리 21.04.04 13
    61 새 책! 『객체들의 민주주의』 레비 R.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갈무리 21.03.01 39
    60 님의 침묵을 감상하며 님의 목소리 21.02.19 50
    59 새 책! 『방법으로서의 경계 ― 전지구화 시대 새로운 착취와 저 갈무리 21.02.04 46
    58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 라는 시에 대해 문의 20.11.20 71
    57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네요. 김여순 20.08.09 160
    56 상담 감사해요 김순아 20.05.27 169
    55 전환의 시대 진명 20.05.26 138
    54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네요. 김순아 20.04.22 152
    53 (수필) 만해학교에서 4 맹꽁이 19.11.20 221
    52 수필) 만해학교에서 3 맹꽁이 19.11.20 1077
    51 이제 겨울이네요 황미미 19.11.18 217
    50 만해학교에서 2 맹꽁이 19.11.17 220
    49 만해학교에서 1 맹꽁이 19.11.17 241
    48 10월9일 개강! 황수영선생님의 베르그손, 이임찬선생님의 노자 『 다중지성의 19.09.26 252
    47 10월7일, 다중지성의 정원 강좌 개강! 다중지성의 19.09.21 270
    46 [기획강좌] '조금 깊게 읽는 「논어」'(2019.11.1(금)~22(금), 총 인권연대 19.09.03 273
    45 주차관련~ 이지영 19.07.18 304
    44    답글 주차관련~ 만해기념관 19.07.19 365
    43 7월8일 개강 시작! 페미니즘, 철학, 역사, 예술 강좌가 열립니다 다중지성의 19.07.07 290
    42 우리는 지금 광수생각 19.07.02 271
    41 7월1일, 다중지성의 정원 강좌 개강! 다중지성의 19.06.15 276
    40 감사해요 김미선 19.06.06 266
    39    답글 감사해요 만해기념관 19.07.19 283
    38 [무료교육]내일배움원격평생교육원 내일배움 19.06.03 242
    37 기획전시 프로그램 bs 19.06.02 258
    36 기형도문학관 "민족시인 6인의 삶과 문학" 시낭독과 문 기형도문학 19.05.23 219
    35 다중지성의 정원 4월 10일 개강 강좌ㅡ 예술사회학, 철학, 영화, 다중지성의 19.04.06 256
    34 감사해요 요리조리 19.03.25 253
    33 유료방문 소감입니다 방문자 19.03.06 296
     1  2  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