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독립운동에서 본 자유사상

    만해 한용운은 대한제국이 주권을 상실한 지 10년이 되는 1919년 3월 1일에 손병희 등 32인과 함께 조국의 자주 독립을 골자로 하는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33인 전원이 일경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때 옥중 집필한 것으로, 독립을 선언하게 된 취지와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한 것이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이다.
    이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①개론 ②조선독립 선언의 동기 ③조선독립 선언의 이유 ④조선 총독정책에 대하여 ⑤조선독립의 자신 등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해가 그 개론의 서두에 가장 먼저 설명한 것이 바로 '자유'이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자유'를 강조하였다.
    이는 미국의 제퍼슨 대통령이 인간의 자유를 높이 제창하여 "신이여 자유를 주소서. 그렇지 아니하면 차라리 죽음을 주소서"라고 한 것은 '인간의 자유'를 선언한 것으로서, 이는 곧 '자유'를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큰 행복이요 권리임을 강조한 점에 있어서는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제퍼슨 대통령의 '인간의 자유'에 대한 선언은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라고 청한 것으로서 즉, 신에게 의지하는 자유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의 자유라고 하기에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반해 만해는 이러한 제퍼슨 대통령의 '자유 선언'을 못마땅하게 여겨 '자유'에 관한 어느 강연회 석상에서 "신이여 자유를 받아라"고 크게 외쳤다. 이는 얼핏 보면 만해 한용운의 역설적인 표현인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이는 신으로서의 권능을 인정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자유는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으며 또 향유되어질 수 있다는 신에 대한 의존성을 배제한 만해의 대담하고 강렬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해의 이러한 사상은 곧 우리 개개인의 자유 더 나아가서는 겨레, 국가의 자유 어느 것 하나 우리 자신이 노력하여 그것을 창조하고 그것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힘으로 과감히 그 장애를 극복하고 향유되어야지, 신이 그렇게 해주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적대국인 일본이 너그러운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굳은 민족적인 의지로 떨쳐 일어나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만해는 독립 선언서 끝에 공약삼장을 덧붙이기를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라고 써넣었던 것이다.
    이런 뜻에서 볼 때에 자유의 창조자도 우리이고, 자유의 수호자도 우리이며, 자유의 쟁취자도 우리이고, 자유를 향유할 특권자도 우리니, 이렇듯 인간이 자유의 주인공이라면 만일 신이 있다 할지라도 신이 자유의 주인공인 인간이 창조한 자유를 받을 것이지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줄 수는 없기에 "신이여 자유를 받아라"고 과감히 외친 것이다.
    이 얼마나 장쾌한 인간의 '자유 선언'인가! 위에서 언급한 제퍼슨 대통령의 '신이여 자유를 주소서' 한 자유 선언을 그 당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두 신화나 명언으로 받들어 추앙하였으나, 만해의 지혜로운 안목으로 볼 때에는 제퍼슨 대통령의 이 선언은 유치한 표현으로서 인간의 기본권에 저촉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는 인간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하고 쟁취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한용운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개론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라 하였다. 그러기에 만해는 조국의 자주 독립이라는 창조적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조국 대한제국이 주권을 상실한 지 10년 만인 1919년에 조국의 자주 독립이라는 큰 일을 이루기로 결심하고 동지들을 규합할 적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구한국의 고관 대작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구한국의 쇠망을 몸소 겪은 사람들인 만큼 조국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이 누구보다 클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이 강할 것으로 짐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한국의 고관을 지낸 자들의 태도는 한결같이 조국의 독립운동에 동조하는 체 하면서도 정작 〈독립 선언서〉에 서명 날인을 받으러 가면 모두 구실을 만들어 꽁무니를 빼 한 사람도 서명 날인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천도교, 불교, 기독교의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33인만이 〈독립 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여 기미년 3 1 독립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독립 선언은 우리 민족의 울분과 원한을 풀자는 민족운동인 동시에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인류사의 큰 등불이었다. 만해는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개론에서 분명히 밝히기를 그러나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인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해야 한다.

    라고 하였다.
    만해 한용운이 조국의 독립을 선언하니, 일제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먼저 33인을 체포하여 수감하고 모진 고문과 혹형을 가하였으나 불굴의 독립정신에는 일제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해는 3년형의 옥고를 치룬 끝에 1921년 석방되었다. 만해가 출옥하던 날 구한국의 고관을 지낸 모씨 등이 3 1운동 당시 〈독립 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여 참가하지는 아니하였지만, 그래도 민족적 양심에서 부끄러움과 가책을 느끼며 33인의 휼륭한 뜻과 행동을 우러러 존경하던 터에, 이제 33인이 석방 출옥하게 되니, 그동안의 옥고를 위로하고 석방 출옥한 것을 환영하는 뜻에서 서대문 형무소 앞까지 가서 위로 겸 치사를 하였다. 만해는 위로 겸 환영차 나온 그들을 보고는 반가워하는 기색은 커녕 오히려 그들을 노려보면서 "이 못난 자들아, 네 놈들은 늘 남의 환영이나 다니지, 환영을 받을 짓은 왜 못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만해가 위에서 한 말은 그들을 나무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조국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자유는 우리 겨레가 스스로 쟁취하여 되찾아야 할 것이지, 누가 줄 때를 기다리며 천연하게 있을 수는 없음을 내포하고 있다.

    만해는 '조선독립 선언의 동기'에서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후 자존성이 강한 조선인은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어느 한 가지 사실도 독립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동기로 말하면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며 조선독립 선언의 동기로써 첫째는 조선 민족이 실력이 있음을 들어 설명하였고, 둘째는 세계 대세의 변천을 들어 말하였고, 셋째는 민족 자결 조건을 들어 말하였다. 그리고 '조선독립 선언의 이유'에서
    아아, 나라를 잃은 지 10년이 지나고 지금 독립을 선언한 민족이 독립 선언의 이유를 설명하게 되니 실로 침통함과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독립의 이유를 네 가지로 나누어 보겠다.

    하여 첫째는 민족의 자존성을 들어 말하였고, 둘째는 조국사상을 들어 말하였으며, 셋째는 자유주의를 들어 말하였고, 넷째는 대세계의 의무를 들어 말하였다.
    만해는 특히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말 가운데,
    인생의 목적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면 여러 가지 설이 구구하여 일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인생 생활의 목적은 참된 자유에 있는 것으로서 자유가 없는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으며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아까워할 것이 없으니 곧 생명을 바쳐도 좋을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합병한 후 압박에 압박을 더하여 말 한 마디, 발걸음 하나에까지 압박을 가하여 자유의 생기는 터럭만큼도 없게 되었다. 피가 없는 무생물이 아닌 이상에야 어찌 이것을 참고 견디겠는가. 한 사람이 자유를 빼앗겨도 하늘과 땅의 화기(和氣)가 상처를 입는 법인데 어찌 2천만의 자유를 말살함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고 하였다. 만해는 또 '조선 총독정책에 대하여'에서

    조선을 합방한 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시정 방침은 무력 압박이라는 넉 자로 충분히 대표된다.

    고 하여, 역대의 총독 즉 사내(寺內)와 장곡천(長谷川) 등 정치적 학식이 없는 일개 군인들의 조선에 대한 시정(施政)은 군력 정치요 철포 정치였음을 지적하고, 이어서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조국을 회상하며 이천만 민족의 자유를 묵소(默訴)한다 하였고, 덧붙여서 말하기를,
    또한 종교와 교육은 인류 생활에 있어 특별히 중요한 일로서 어느 나라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없거늘 조선에 대해서만은 유독 종교령을 발포하여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교육으로 말하더라도 정신 교육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과학 교과서도 크게 보아 일본말 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한 학정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고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만해는 또 '조선독립의 자신'에서
    이번의 조선 독립은 국가를 창설함이 아니라 한때 치욕을 겪었던 고유의 독립국이 다시 복구되는 독립이다. 그러므로 독립의 요소 즉 토지 국민 정치와 조선 자체에 대해서는 만사가 구비되어 있어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리고 각국의 승인에 대해서는 원래 조선과 각국의 국제적 교류는 친선을 유지하여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바다. 정의 평화 민족 자결의 시대인즉 조선 독립을 그들이 즐겨 바랄 뿐 아니라 원조조차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만일 일본이 침략주의를 여전히 계속하여 조선의 독립을 부인하면, 이는 동양 또는 세계 평화를 교란하는 일로서 아마도 미 일, 중 일 전쟁을 위시하여 세계적 연합 전쟁을 유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라고 하였다. 이는 조선이 독립되면 곧 세계 평화가 이룩될 것이요, 반대로 조선이 계속 탄압을 받아 자유의 국가가 되지 못하면, 이것은 곧 세계 전쟁이 재연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는 탁론이었던가? 만해가 지적한 대로,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독립을 인허(認許)치 않았던 결과 대륙 침략의 마수를 드러내 중 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까지 벌려 그 결과는 결국 일본의 패망으로 돌아갔고 조선은 8 15 해방을 맞아 독립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만해 한용운은 대정(大正) 8년 3월 11일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에서 검사 하촌정영(河村靜永)의 취조를 받을 때에 "피고는 금번의 운동으로 독립이 될 줄로 아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 독립이 될 줄로 안다. 그 이유는 목하 세계 평화 회의가 개최되고 있는데, 장래의 영원한 평화가 유지되려면 각 민족이 자결하여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민족 자결이란 것이 강화 회의의 조건으로써 윌슨 대통령에 의하여 제창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상태로 보면 제국주의나 침략주의는 각국에서 배격하여 약소 민족의 독립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의 독립에 대하여서도 물론 각국에서 승인할 것이고 일본서도 허용할 의무가 있다.

    하니, 검사가 다시 심문하기를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라고 하자 만해가 답변하기를,

    그렇다. 계속하여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며, 일본에는 중(僧)에 월조(月照)가 있고, 조선에는 중에 한용운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 얼마나 조선 독립에 대한 자신과 용기를 잃지 않는 꼿꼿한 독립투사의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