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머 리 말

    우리나라 근대 민족사에서 만해 한용운은 불교계에 있어서는 혜성처럼 빛났던 대선사요 대학승인 동시에, 문학계에 있어서도 큰시인이요, 대문장가요, 대저술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만해 한용운이 처해 있던 대한제국의 말기 국가의 상황이 일본의 침략을 당한 비참한 운명 속에서 "조국을 자주 독립의 국가로 광복하겠다"는 큰 깃발을 들고 민족운동에 앞장을 섰던 독립운동가요, 사상적으로도 큰 지도자였으며, 대웅변가였다는 사실이다.

    만해 한용운 (1879∼1944)이 66년이라는 생애 속에서 한 사람으로서 이렇듯 여러 가지 일들을 수행해 낸 것을 볼 때, 만해는 우리 민족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인류 가운데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위대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이 종교인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 그리고 문학인으로서의 면모를 표출해 낸 산물로써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불교유신론》,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님의 침묵》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므로 만해 한용운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 업적을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위에 나열한 저서들의 종합적인 고찰과 연구가 이루어져야겠다.
    《조선불교유신론》은 당시의 불교를 현대적 차원에서 혁신해야 할 문제들을 논저한 것이니 만큼 이는 불교에 국한된 주장이라 할 수 있겠고,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그가 기미년 3 1 독립 선언 후 일경에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법관들의 심문에 대한 답변의 진술서이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다가 8 15 해방을 맞은 뒤에야 비로소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님의 침묵》만이 1926년 회동서관에서 초간본이 간행된 이래 문학 작품으로서, 사상서로서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애독되어온 것이라 하겠다.
    만해 한용운은 이 시집의 서두 〈군말〉이라는 시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衆生이 釋迦의 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戀愛가 自由라면 님도 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自由에 알뜰한 拘束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고 밝히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만해는 '님'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 것임을 알 수 있고, 만해의 행동은 '님'을 찾는 행동이겠으며, 만해의 사상은 '님'을 사모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해 한용운의 '님'은 과연 누구일까? 이에 대하여 송욱(宋稶)은 그의 논저 《시인 한용운의 세계》에서 "님이란 애인이요, 불교의 진리 그 자체이며, 한국 사람 전체를 뜻한다. 그렇다. 이 시집의 주제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요, 중생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정광호(鄭光鎬)도 그의 논저 《민족적 애국지사로서의 만해》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한 그 자신의 말대로 '님'이란 그에게 있어서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생각하는 '님'만이 '님'은 아니었다. 석가모니가 생각하는 님을 중생이라 한다면, 만해가 생각하는 님은 중생의 한 부분인 겨레요 조국이었다 해서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혹은 불교 혹은 문학, 만해가 추구하는 대상이면 무엇이건 다 님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은 물론 겨레와 조국이 아니었던가 싶다. 따라서 이렇게 깊이 사모하고 있던 '님'을 잃었을 때 그는 사뭇 몸부림쳐 통곡을 하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 독립 국가 '조선'이란 이름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다시 말해서 '님'을 빼앗긴 슬픔을 그는 이렇게 읊조렸다.

    고 하였다.
    위에서 논술한 것들을 고찰하여 보면, 만해 자신은 그렇게 그리워하고 애타게 찾는 님에 대하여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뉘앙스 깊은 말만을 하였을 뿐, "나의 '님'은 이것이요"하고 뚜렷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다. 다만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는 추상적인 말로 시를 맺고 있다.
    그래서 만해의 '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여, 어떤 이는 만해가 조국 광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독립투사라는 측면으로 보아 그의 '님'은 '조국'이나 '겨레'라고 말하고 있으며, 어떤 이는 만해가 대선사요, 대학승이라는 측면을 강조하여 그의 '님'은 '부처'나 '중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만해가 대사상가요, 대철학가였다는 것을 강조하여 그의 '님'을 '열반'이나 '진리'라고 말하였고, 어떤 이는 만해가 대시인이요, 소설가였음을 강조하여 그의 '님'을 '문학'이라고 하는 등등 그 의견은 다양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의들은 만해 한용운에 대해서 각기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의 일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만해는 한 사람이다. 만해가 아무리 여러 가지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하여도, 그의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사상은 어떤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만해의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사상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님'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써 필자는 '자유'라는 두 글자로 대변하고 싶다. 그것은 만해가 '부처'를 님으로 하는 것은, 부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유를 얻으신 분으로서 모든 번뇌와 물욕에서 해탈한 분이기 때문에 부처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님으로 삼는 것이라 하겠으며, '중생'을 님으로 삼음은 중생은 세간의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 등 온갖 번뇌에 속박되어 있는 존재이기에 이를 불쌍히 여겨 그 속박과 번뇌에서 해탈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유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 '조국'을 님으로 하는 것은 우리의 조국인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 식민 정책이라는 굵은 쇠사슬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을 성취하기 위함이요, '겨레'를 님으로 삼음은 5천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이 불행하게도 하루 아침에 남의 나라에 예속되어 언어 문화 종교 출판 집회 거주 행동 사상 등의 모든 자유가 박탈당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비참하게 빼앗긴 모든 자유를 되찾자는 민족운동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열반', '진리', '문학' 등을 그의 님으로 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주체적이고 깨끗하다는 '상락아청 (常樂我淸)'의 4가지 덕에서 기인하며, 철학에서 말하는 '진리'나 문학적인 측면에서의 '문학' 등이 모두 정의 사회의 구현과 평화롭고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즉, 자주 평등 평화 자유를 의미하고 제창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고찰해 본 즉 만해의 '님'은 어떠한 대상, 어떠한 행동,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간의 자유', '민족의 자유 평화', '조국의 자주 독립', 더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의 자유'라는 사상으로 요약되겠으니, 이러한 뜻으로 볼 때에 만해의 '님'을 단적으로 표명한다면 첫째도 '자유'요, 둘째도 '자유'요, 셋째도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