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朝鮮佛敎維新論 - 요약문

    1910. 12. 8 說 , 1913. 5. 25. 발행(불교서관) 불교대전 관계로 통도사 거주


    구세주의의 불교, 사회참여의 불교 유신 이라기 보다, 불교의 근본 이념으로 되돌아가 사회 참여와 민중 지도의 선봉에 설 때 인간 정신의 유신 강조

    첫째 : 진보사관. 진정한 문명의 이상에 도달하는 불교, 부자연스런 요소의 인습과 잔해 청산 둘째 : 불타의 근본정신을 체득한 평등주의의 불교 셋째 : 불교과 현실과의 적극적인 관계속에 있어야 함을 강조, 시대정신을 깨닫는 북교진, 속의 상즉상리, 부즉불리의 개념

    유신론의 구성

    제 1 장 ― 제 4 장 : 불교 유신론의 이념적 근거 제시
    (서 론, 불교의 성질, 불교의 주의, 불교의 유신은 파괴로 부터)
    제 5 장 ― 제 16장 : 현실적으로 해결 되어야 할 12개 항목의 덕목
    제 17장 ― 결론

    序 文

    매실을 보고 그 갈증을 멈추게 하는 것도 양생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 유신론이야 말로 매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갈증의 불이 몸을 불 태우니 매실의 그림자를 가지고서라도 만석이나 되는 많은 샘물을 당해 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梅 實 : . 養生法
               維新論 : 梅實. 그림자
     

    一. 서 론

    옛사람 曰 <謀事하는 것은 사람에 있고, 成事하는 것은 하늘에 있다.

    사람의 자유를 빼앗았음 ― 하늘
    하늘도, 사람도 ― 형체가 있는 한 물건이 성패의 지시 ― 문제점
    무형 ― 천리는 곧 진리 ― 인­과
    요, 인간 존엄의 사상 결여
    그렇다면 <모사, 성사도 나에게 있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 있고,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있다> 옛사람 말 에, 아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 자유와 평 등을 완전히 상실케 하는 결과 밖에 없다.

    불교유신은
    천운에 맡기지도, 남에게 미룰 수도 없이 그 책임은 오로지 "나"
    이 유신론은 문명국 사람이 본다면 무용지물,
    현금의 조선 승려들이 본다면 취할 점이 없지는 않을 것

    유신되지 않는 이유
    1)천운에 맞기고, 2)남을 탓 함이 그 원인
    유신 그것은 거짓 유신이 있어야 참 유신이 출현 할 수 있는 법
    이 논문은 거짓 유신이기는 하지만 후일에 거짓 유신이 확인되면,
    만해의 영광이 이 보다 더 크겠는가

    <유신론도 유신의 대상>―절대주의 배격(매실의 그림자)

    二. 불교의 성질

    1) 종교적인 성질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산다, 미신과 종교의 차이성
               미혹에서 벗어나게, 미신에서 벗어나게
               "나"의 이 주체 파악 없이 즉 심의 구경 각 없이 미신이다.
               내가 나를 믿는 것이―인간 최대의 희망

    2) 철학적 성질
               복.덕이 구족, 일체종지
               청)양게초, 독)칸트의 도덕론과 자유와 진여의 관계, 영)베이컨과 능엄경의 비교. 프)데카르트와 원각경의 비교, 플라톤의 대동설, 루소의 평등관
               동서 고금의 학설 포용. 동.서 비교 철학의 효시

    三. 불교의 주의

    1) 평등주의
               자유주의
               세계주의

    2) 구세주의
               이기주의의 반대

    四. 유신은 파괴로부터

    五. 승려의 교육

    1) 보통학(기초학, 교양학)
               전문학을 하기위한 예비학인 동시에 인간교양의 기본학.            재래의 강원교육은 이 부분이 소홀.

               강원교육의 편성체제
                          사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
                          수의과

               문제점
                          1)인간의 교양과 기초학 과목 전무
                          2)불교전문 학과목의 기초과목이 없다

    2) 사범학
               스님 師 스승님의 준말
               師〓지도자요, 모범자라는 뜻

               삼각〓 1)자각, 2)각타, 3)각만.
               본각〓 누구나 다 각할 수 있다.
               시각
               구경각
               본사, 천인사, 대사
               사범의 두가지〓 1)천연의 사범, 2)인사의 사범-맹모삼천지교

               승려에게 사범의 자격이 있는가?
               마치 귀머거리가 음악, 만국지도를 소경이 단청구경.

    3) 외국 유학
               <교육을 방해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교육을 진흥시키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고 역설
               인도, 중국, 구미.― 불교조사의 전적을 탐방

    4) 교육(학)의 요령
               지혜로써 자본을 삼고
               사상의 자유로써 공례를 삼고
               진리로써 목적을 삼는다.

               사상의 자유가 가장 중요
               사상의 자유가 없는 것은 노예의 학이다.
               그러므로 사상의 자유는 사람의 생명이요 학문의 요체다.

    5) 강원교육제도
    논강: 역량에 맞게 정해진 과제를 가지고 그 글과 뜻을 연구하여 서로 토론
    문강: 스승앞에서 논강의 가, 부를 가리고 대의를 파악

               스승의 학설만 쫓아가지 않고 학생이 스스로 연구하는 특색.
               이것은 학문의 사상의 자유가 강조.
               요즈음 논강도 없고, 문강도 없다. 오히려 문강은 사견외도로 주목

    6) 결론
               세월만 허송 문명의 대세를 거역치 못할 것이다.


    七. 염불당의 문제

    불교의 한종파 염불을 주 수행으로 극락세계 왕생을 발원
    염불종 정토종

    4종염불
               1. 名稱念佛
               2. 觀想念佛
               3. 觀象念佛
               4. 實相念佛

    4종 念佛 중 주로 名稱염불이 주가됨

    念佛왕생을 주수행한 스님 新羅 견덕왕 때 발징화상
    건봉사에서 미타만일회를 설치 도반 31명과 함께 욱일등공의 기적을 이룬뒤 부터 염불종이 성행

    염불에는 중하의 근기까지도 제도
    영명선사는 만인이 닦아서 만인이 다 갈 수 있다.

    세월 속에 구복지계로써 입으로는 축음기 마냥 나무아미타불을 허수아비처럼 부른다.

    개선점
    1. 아미타불           10만억 국토           소리지른다고 들리겠는가
    2. 불신 법계충만           원근           내외의 분신아닌 것이 없다.
                          무엇을 소리 지른다는 것인가.
    3. 자성미타 자기마음이 아미타불
    자기몸 가운데 주인공인데
    다른 사람이 부를수는 있어도 자기가 부른다는 것은 이상하다.
    누가 부르고 누가 대답 할 것인가?
    4. 불의 도를 불의 명호를 부르는 방법으로 해답이 있겠는가.

    염불의 목적론인 정토왕생은
    예토와 정토의 구별은 마음에 있다.
    경에 중생의 마음이 곧 보살의 정토 그러므로 자기 마음에서 정토를 구하자.
    명칭염불을 하면 정성에 감동되고 그의 뜻을 어여삐 여기어 극락 정통에 인도할것이라 하지만 인과의 도리에 어긋난다.
    정토에 왕생항 원인이 있어야 한다.
    만약 자기의 명호를 부른자만 인도하면 평드심이 문제

    진정한 염불은 마음으로 염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가지고 불의 學을 불의 行.
    일어·일묵·일정·일동이 모두 염불의 대상 직종이나 처소에서 할 수 있다.
    불문에 무연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명칭염불을 하도록 한 것이 말류에 폐단이 컸다.

    論廢念佛堂
    「오늘 조선불교의 염불은 염불이 아니고 호불(呼佛)이다.」라고, 지적한 다음, 염불과 호불의 차이를 분명히 가른다. 다음으로 불교의 진리를 피력하여 가면서 호불이 부당함을 역설한다.
    불신(佛身)이 법계에 충만하여 있고, 또 원근(遠近) 내외(內外)에 불신 아님이 없다. 그러니, 무엇을 부른다는 것인가. 또, 내 마음 가운데 아미타불이 있고, 바로 내 마음이 아미타불인데, 남이 나를 부르면 몰라도 내가 어찌 나를 큰 소리로 부를 수 있겠는가. 아미타불인 내가 아미타불인 나를 부른다면 누가 대답하겠는가. 대개 지극한 이치는 말이 없는데, 어찌 그다지 말이 많은가. 불도(佛道)를 큰 소리로 부름으로써 구할 수 있다면 천 번 부르고 만 번 불러도 좋다. 그러나, 큰소리로 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조용한 마음으로 염불함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불교 현황은 큰소리치며 호불 하는 것이 왕생극락(往生極樂)하는 염불인 것처럼 꾸미고 순진한 아녀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니 하루빨리 시정해야 한다고 한용운은 외친다. 가짜 염불이 진짜 염불을 좀먹는 폐단은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八. 포교문제
    1. 열성
    2. 인내심
    3. 자애심

    論布敎
    한용운은 조선불교가 쇠퇴하게 된 까닭은 포교에 적극적으로 힘쓰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더구나 신자의 대부분을 무식한 부녀자들이 차지하고 남자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들어 그는 재래 불교의 비포교성을 통렬히 비난하다. 그리고 포교의 방법론까지 제시하며 당시 포교에 열중하던 기독교의 예를 들어 불교계에 경종을 울린다.
     
    九. 사원의 위치
    1. 진보적인 사상 결여
    2. 모험적인 사상
    3. 구세적인 사상
    4. 경쟁적인 사상

    해결방법
    상책 산중사원 기념할 만한 사찰 외 도회지에다 세우고
    중책 산중사원 중 역사가 오래고 문화재가 있는 사찰은 남긱 소사나 폐사된 것 은 도회지로
    하책 사원이 연합하여 표교소출장소를 도시에다 세우자.

    論寺院位置
    <유신론>중에서 그는 이 항목에 많은 열의를 쏟고 있다. 산간 벽지에 물러앉은 사원의 위치를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까지 인용하며 가장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는 산간 벽지에 숨어 있는 사원의 위치와 불교적 사업의 관계를 한가지씩 열거하며 논술한다.

    첫째, 사원의 위치가 산간에 있기 때문에 진보적 사상이 위축되었다. 밤낮 산 속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피는 꽃을 즐기다 보니 진보적 기상은 저절로 위축되었다.
    둘째, 무모험적(無冒險的) 사상이다. 바닷가에 살면 사람은 모험을 하게 되지만 움직이지 않는 산 속에 살게되면 아무래도 모험심은 생기지 않는다.
    셋째, 무구세적(無救世的) 사상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무리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구제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옛날 소부(巢父)나 허유(許由)같은 인물은 산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염세주의에 빠졌다. 지금 사원의 위치는 염세주의에 흐르기 알맞을 뿐 구세주의에는 부적당하다.
    넷째, 무경쟁적 사상이다. 깊은 산 속에 떨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시대의 조류와는 멀리하게 되니 치열한 경쟁에는 끼지 못하게 된다.

    이 밖에도 그는 사원의 위치가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승려 교육·포교·통신 등 여러 모로 이익이 없다는 점을 들어 조선 불교는 불교의 구세적·포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도시로 그것도 큰 도시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十. 佛家에서 崇拜하는 塑繪

    소회는 미신에서 나온 거짓된 모습이니 전부를 들어 소각함이 상책이다. 그리하여 절을 깨끗이 해서 암흑시대의 미신을 일소하고 진리를 배양하여 불교의 새 나라를 고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나침이 있을까 두렵다.

    내 의견을 말해 지혜로운이의 판단을 기다릴까 한다.

    무릇 現象은 진리의 거짓모습(假相)이며, 塑像은 現象의 거짓 모습, 그러므로 진리의 입장에서 소상은 거짓 모습의 거짓 모습이 된다.

    천지간에 오래된 까닭은
    사람의 마음은 원래 고요하나 객관을 대하면 움직인다.
               死            슬퍼한다.
               生            기뻐한다.
               賢人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惡            징계하고 선행에 힘쓰고자 한다.

    이것은 객관에 부딪쳐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도 따르기 마련이다. 옛사람이 이에서 형상을 취하여 오직 인심이 그릇된 곳으로 흐르고 바른 데로 나아가지 않을까 두려워한 까닭에 여러 가지 예의의 거짓모습을 만들어 이를 객관화 했으니 소회도 그 하나라 하겠다.

    예컨데 성인, 군자, 충신, 의사, 효자, 열려의 비각을 세워 선행을 표창, 장려함
    이것은 先人을 흠모하는 誼를 나타낸 것이고.
    하나는 後人을 권장하는 對象을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소회는 衆生이 相對해야할 대상.

    그러나 이 애매한 거짓 모습이 사람의 도덕적 심정에 영향을 주는 점에서 불가사의한 공로가 있다. 내가 친히 경험한 바를 예를 들어 보면.

    공자묘
    관공묘           P91-92

    글과 像(말과 모습) 거짓 모습의 대상. 마음을 감동 시키는 차이가 있다.
    대상에 직접 간접의 차이
    간접적인 대상이란 무엇인가 글이 이것이다. 기록이요
    직접적인 대상이란 무엇인가 像이 이것이다. 그대로 나타낸 것.
    소회가 공이 있음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현대에도 동상, 흉상,

    현재의 민지가 미개하여 아첨하며 제사 지내기를 하는 폐단이 그하여 혼란과 번잡한 상태를 경계하여야 한다.
    1) 나한, 독성 적명의 즐거움에 탐닉하고, 작은 과보에 스스로 족하여 번뇌 속에 들어가 중생제도를 게을리 하는 존재로 부처님으로 부터 꾸지람을 들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죄인이요, 승가의 외도임에 틀림없다. 소원. 욕망.
    부처님의 지욱, 축생에 들어 온갖 고통을 자진하여 받으며 중생제도의 비원을 갖고 계시다. 대원력.
    #지옥에서 극락을 구했소!! 한용운 말씀.
    이타행의 보살행 "나"는 어디에?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곳에.

    2) 칠성 별을 상으로 하여 받드는 행위.
               천지 일월 삼라만상이 똑같다.
               부처님의 화현이 어찌 칠성만이냐?

    3) 시왕(十王) 염라국의 열명의 대왕. 사람의 생, 사. 직업을 심판.
               죽을 사람의 재판관.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존재.
               불도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극락에 가게 되어 있다.
               정업을 닦으라. 그 길이 왕생 극락.

    4) 신중(神衆) 부처님께서 영산에 계실 때에 호위하는 임무를 띠고 항상 따르던 신의 무리이니
               불법을 보호하는 책임. 행위와 동작이 오직 부처님의 뜻에 따를 뿐임.
               그러므로 불 법 승이 일체니 불법을 보호하고, 승려를 보호하는 임무.
               승려는 상관이고 신중은 호위 순경과 같다.
               그 밖에도 천왕, 조왕, 산신, 국사 따위도 허황하고 말할 가치가 없다.

    화복(禍福)은 오직 사람의 손으로

    미신이 다 없어지면 종교적 성질이 시들고 말 것이니 불교를 철학으로만 말할 수 있는가?
    종교적 미신은 오직 하나를 믿는 미신일 뿐이며 여러 신을 믿는 미신은 아니다.
    부처님을 미신하는 것이다. 아침에 부처님을 저녁에는 나한님을, 또 칠성을 하는 식으로는 곤란하지 않는가.
    이것은 낮이되니 도깨비가 갈바를 몰라 산으로 갔다가, 물로, 나무로 갔다가 하다가 피로를 못견디는 것과 같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미신의 적이다.
    난신(亂神)이라고 부르자.
    신앙이 없는 신앙인 까닭에 들어가 패하지 않는 것이 없다.

    난신의 도구---잡신의 소상---개혁

    불.보살의 소회는 석가모니불로 통합

    근기는 어떻하나? 그러므로 대상은 다양한 것인데?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곳에 기념관을 설치

    論佛家崇拜之塑繪
    이어 한용운은 탱화(탱화) 따위를 불사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조선불교에 조상(造像)이나 탱화의 숭배가 심하다. 어떤 사람은 이 같은 상이나 그림은 미신에 가까운 가짜 상이니 모두 한꺼번에 불태워서 사원을 깨끗이 하면 미신적 암흑 시대에서 벗어나 조선 불교도 새 시대에 알맞는 종교 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타당한 말이다.

    그리고 정리해야 할 미신적 소회(塑繪)의 종류로서는 (一) 칠성각(七星閣)에 안치된 그림이나 상들, (二) 나한 독성(羅漢獨聖)각에 있는 그림과 상들, (三) 시왕전(十王殿)에 있는 여러 폭의 그림들, (四) 신중단(新衆壇)에 모신 그림과 상들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과 보살상에 대해서는 종교적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므로 모셔 놓는 것이 옳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十一. 佛家의 各種 儀式

    도깨비 연극
    간결할 예식
    예불은 매일 한 번씩, 집회때는 운집종 5회, 불당에 나아가 향을 사르고, 삼정례 그리고 찬불가(가곡은 후일 정함)
    사시공불을 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

    예는 번잡하면 어지러워지고, 공경심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에의 본의가 없어짐. 예는 그본에 중점을 두는 까닭에 喪禮는 슬픔을 주고, 제사는 공경을 주로 번잡하면서 공경하지 않는 것과, 간소하면서 공경하는 것 어느 쪽이냐?
    친숙하여 엄숙함이 없는 것과, 뜸하면서 공경함이 있는 것이 어느 쪽이 예냐?

    지극히 존귀하신 분의 상을 공경하고 엄숙히 대해야 할지언정 친숙한 나머지 버릇없이 굴어서는 안될 것. 그러므로 예불의 수가 문제가 아니고 정성이 문제다. 불상앞에서 坐臥起居, 음식, 담소, 버릇없고, 못하는 일이 없다. 허물.

    예불이 너무 뜨면 게을러 지고 있다. 일일 1회

    부처님 공양은 法供養이지 飯供養이 아니다. 다만 特別한 때 (불탄절, 성도일, 열반일 기타)는 예외.

    제공양과 제사는 복을 비는 의식. 복은 빌어서 얻는 것일까? 부처님은 원래 화복의 주관자가 아니시다.

    제사는 자손으로서 과거를 추억하고 그 정성을 헌수, 배례하는 행동을 표현하는 의식. 4대까지 제사 그 이상은 전사. 대가 멀어 은의가 얇은 까닭.

    불가의 제사는 승려의 자비심이 사람들의 영혼으로 하여 정토에 왕생 시키고자 해서 제사.

    대대로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밥과 국 그리고 찌꺼기가 탐나서, 잿밥이 탐나서 다만 복을 빌어 망년되이 제사하는 일은 없애자는 것.

    論佛家之各樣儀式 불교의 모든 의식 절차가 번잡하고 다단하니 과감하게 간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식 간소화 안을 보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사원마다 하루에 한 번 집례(執禮)가 종을 치면 모든 승려들은 의복을 정재하고 법당에 모인다. 그 다음 향을 피우고 세 번 절한 후 함께 찬불가(讚佛歌) 한 번 부르고 끝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 밖에 재공 의식(齋供儀式)과 제사 예절(祭祀禮節)도 마찬가지로 극단히 간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한용운의 불교 유신 안이다.

    十二. 僧侶의 人權回復은 반드시 生産에서

    僧侶의 人權은 生産

    사람 취급 못 받음.
    놀면서 입고, 놀면서 먹는것 - 分利의 개념에 위배.
    分利주의자 - 남. 나라. 세계에 해로운 존재.
    경제의 원칙 무시. 생산 = 소비.
    노동력의 증감과 경제발달 관계는 비례.
    分利主義者 = 生産의 도둑.

    從前의 僧侶의 生活 방법은

    1. 기취생활(欺取生活): 禍福. 布 따위의 말로 우매한 부녀자를 꾀어 행동은 개처럼, 아첨은 여우같이 해서 몸에 감고 입에 풀칠하는 계략을 영위하는 경우.

    2. 개걸생활( 乞生活): 승려 대부분, 남의집 대문에 이르러 절을 하면서 한푼의 돈이나 몇알의 곡식을 구하는 것을 말함. 이밖에 따로 생계가 없음.

    * 승려들에게 한가지 이상한 이야기.
    보살만행(菩薩萬行): 수도와 중생 제도의 방편인데 호구지책을 삼으라는 뜻은 아니다.
    잘 걸식하는 행위(x).
    생산에 종사하는 일은 승려의 금기 (x).
    걸식이 어찌 불교의 긍지리요.
    보살만행 중의 하나인 걸식생활(x). 9천9백9십9.
    上 - 欺
    下 - 萬行. - 천대 받을수 밖에 없었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얘기.
    승려의 인권은 소. 말. 노예 같이 보았다.
    승려의 인욕이라고 구두선 을 하고, 극단으로 하면 부끄러움도 모르는자.
    부처님 = 天上天下에 높아 독굴 = 기계는 어디로, 혈기는 어디로.

    현대 사회는 경제활동이 성패를 좌우함.
    그러므로 생산이 없으면 세계가 혹은 파괴되기도 하고, 한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개인은 개인대로 살 수 없는 판국이다.
    세계는 경제의 각축장.
    문명은 자주 경제력의 뒷받침이 성패의 결정.
    문명국의 시작 = 생산에 종사하느냐 않느냐로 인권을 구분하지 않으냐.
    이제시대의 전래정치 보다 더 심한 압박을 받는다.
    人間고유의 人權회복은 = 生産으로 자활의 길.
    굴욕과 능멸을 없앨수 있다.

    사람과 생산의 관계는 고기과 물의 관계다.

    황하 강의 고기 - 북래. 남영에 노는데. 수례바퀴 자취의 물고기 - 말린포를 파는 고점에서 놀면서 의식을 남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 잔신을 망치는길.

    승려의 생산활동의 방패막이(난점)는

    1. 자본이 없다.
    2. 방법을 모른다. *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사물이 가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다 자본이 될 수 있다. 까닭은 반드시 노력을 있어야 함이다. 노력은 자본의 자본이다.

    방법이란 자본을 움직여 이익을 늘리는 것.

    승려들의 생산활동의 특색

    1. 자연계의 특색: 山林의 산출 즉 조림사업
    (유실수, 정원수, 경제림으로 바꾸라)
    경에 땅이 있으면 여기에 재물이 있다.
    대성사의 사과스님 이야기 (1만 2천평 개간): 소, 닭, 돼지까지 사육.

    2. 인사계의 특색: 승려의 공동생활을 이용하여 공동경영(회사)이 가능
    한솥 한밥을 먹으니까.
    승가의 특색을 살려 거기에 적합한 생산을 가져야 한다.

    아, 옷 안에 있는 밝은 구슬이 고양살이하는 가난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이는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냐. (법화경: 오백제자 수기품)

    論僧侶之克復人權이 必自生和始
    그는 또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이 옷을 입으려면 옷감을 짜야하고, 밥을 먹으려면 밭을 갈아야 한다. 짜지도 않고 갈지도 않으면서 옷과 밥을 얻으려는 사람은 유의 유식(遊依遊食)자로서, 사회나 나라에 해를 끼치는 무리들이다. 그리고, 자기의 힘으로 노동하거나 생산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남의 노동과 생산에 의지하여 살게 되니 생존의 권리가 내게 있지 않고 남의 손에 있다. 그러니, 어느 핸가에 자유를 보전하고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조선 승려가 생활하는 양식을 분류하면 대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사취(斯取)생활이다. 듣기 좋은 말로 우매한 부녀자들을 속여 불공이나 재를 올리게 하여 호구지책을 마련하는 것을 사취 생활이라 한다.
    둘째는 걸식(乞食)생활이다. 승려들은 보살 만행(菩薩萬行)을 위주로 한다고 하여, 스스로 생산적 노동을 부정하고 남의 것을 구걸하는 것을 걸식 생활이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생활 방법이 모두 남의 것에 의존하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독립된 입장에 서지 못한다. 따라서, 독립된 위치에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승려는 의존적 생활방법을 지양하고 독립 생활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생존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원이 근대적 자본 축적에 앞장서라는 뜻은 아니다.

    十三. 佛敎의 將來와 僧侶의 結婚問題

    범망경
    사분율
    화엄경

    小乘의 根機가 천박해서 欲望으로 흘러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계율을 설정한 것이다.

    다 때에 응하고 근기에 따라 교화하는 방법.
    마땅히 결혼이 불교의 시대적 상황에 이로운가? 이롭지 못한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결정하자.

    승려의 결혼 금지에 대한 문제점.

    1. 윤리에 해롭다.
    2. 국가에 해롭다.
    3. 포교에 해롭다.
    4. 교화에 해롭다.
    그러나 나라고 해서 부처님의 계율을 무시하여 승려 전체를 휘몰아 음계를 범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그 자유에 일임하려는 것 뿐이다.
    사학이 아내: 지평, 치엔머 버꺼얼
    철학이 아내: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홉즈, 스펜서, 로크, 루소, 벤덤, 칸트
    문학이 아내 : 볼테에르, 괴테
    정치가 아내 : 윌리암베트, 싸마
    이태리가 아내 : 카브르

    승려도 불교를 아내삼아 일생토록 결혼 하지 않는다면 내 어찌 이를 공경하며 머리에 이고 예배하며 몽상하며 구가하면서 독신으로 지내기를 원치 않겠는가.
    시대와 상황에 맞게하자.
    그후 중추원 헌의서(의장:김윤식) 융희 4년 3월 1910.
    통감부 건백서(통감 자작:사내정의) 명치 43년 9월 1910.

    關於僧侶之嫁娶與否者
    한용운은 <불교유신론>에서 승려의 가취 문제를 상당히 심각히 다루었다. 조선불교의 전도가 승려의 가취 여부에 있다고 극언할 만큼 그의 관심도 크다. 그 지론에 의하면, 모든 승려는 반드시 결혼하여 아내와 남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처님 이후 내려 온 승가의 계율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 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一) 윤리에 해롭고, (二) 종족 번식을 나라의 힘으로 삼고 있을 때, 나라를 해치는 것이라, (三) 포교에 해롭고, (四) 풍습에 해롭다는 것을 들어 불교가 그 아내요, 남편이 아니라면 취가(娶嫁)하라고 권하였다.

    물론 옛날에 파스칼이나 칸트 같은 철인이나 뉴턴 같은 과학자도 일생 독신으로 지낸 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천지 귀신이 곡할 지혜를 가지고 천하가 뒤바뀔 업적을 남겨 놓았다. 칸트에게 있어 아내는 철학이고, 뉴턴에게 있어 아내는 과학이었다. 그렇다면 조선 승려가 취가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모두 불교를 아내로 삼고, 역사적 종교 개혁이라도 완수할 큰 뜻에서인가. 불행하게도 조선 승려가 다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여러 가지 점에서 타당하다.

    이 승려 취처 문제에 대하여, 한용운은 한말(韓末) 조선 정부에 헌의서(獻議書)까지 내면서 권력의 힘으로 강행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더구나, 그가 싫어하던 조선 총독부의 전신인 통감부에도 건백서(建白書)를 제출하여 일본 통감부의 무력으로 승려의 독신을 금지시켜 보려고 시도한 것을 보면 그의 주장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처승 문제는 오히려 <유신론>의 영향보다도 후일 일본 유학 갔던 젊은 승려들의 영향으로 조선 승려 가운데는 비공식으로 가취 생활하는 자가 많이 생겨났으니, 유학 갔던 젊은 승려들은 일본 승려의 가취 생활을 보고 왔던 것이다.

    十四. 寺院住職의 選擧法

    주직이란 한 사찰의 서무를 통치하는 직책. 삼직(총무, 교무, 재무) 포함. 주직에 따라 사찰의 성쇠가 좌우되니 선거법을 강구하자.

    종전에는
    1. 윤회주직: 지우와 현불초를 가리지 않고 순서대로 (나이, 법랍, 방 순서) 큰 사찰
    2. 의뢰주직: 행정광(총무원)에게 혹은 토호나 세력가에게 뇌물을 주고 위세를 빌려서 자리를 빼앗은 다음, 사찰의 돈 될만한 재물은 빼돌린다. 외로운 암자나 절에서.
    3. 무단주직: 완력과 폭력으로 약육강식하는 것. 외로운 암자나 사찰.

    의뢰주직과 무단주직은 사실상 같으나 방법만 둘이다. 자기를 살지게 하는 목적은 동일.


    이 악습의 원인은 승려의 법규가 안 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직제도의 결점은

    1. 통일이 없는 탓이요. (법랍은 몇 년이고, 대보과니 대학은 마쳐야 하고, 불교실무 몇 년이고..)
    2. 봉급이 없는 탓이다.

    의뢰, 무단주직의 방법: 일이 없으면: 이절과 저절의 관계가 없어서 절의 흥망 보기를 대안의 불구경 하듯 하니 야심대욕의 무리가 돌아보아 거릴 것이 없으매 사찰의 재산에 군침을 흘리고 욕심의 불꽃이 몸을 태우게 되어 백방으로 손을 대게 된 것.
    윤회주직의 방법: 재물도 수고로움에 보답할 봉급도 없는데 그 누가 심력을 기울이고 사무에 매달리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서로 양보하고 미뤄서 주직의 자리가 도리어 우에의 묵은 밭이 되었다.

    개선 방법
    1. 절의 대소와 사무의 분량을 고려하여 각기 월급을 정하고.
    2. 선거법은 투표의 3분지 2로서 당선되고.
    3. 외로운 암자나 절은 스스로 절을 관활하여 역시 투표로 행한다.

    * 급료의 차등 본사주지, 말사주지, 신도수, 표교방법에 따른 자율성 인정.

    論寺院住職選擧法
    그 때까지 사원 주지는 선거함이 없이 법랍(法臘)의 차례로 돌아가며 하는 윤회 주지(輪廻住持), 지방 토호나 행정관에게 뇌물을 주면서 주지직을 의뢰 받는 의로 주지(依賴住持), 중론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주지직을 차지하는 무단주지(武斷住持)의 세 가지 형태로 주지직을 맡아 왔다는 것이 한용운의 견해다. 그러므로, 주지가 무능하거나 무식하여 저지른 잘못을 책임 지울 수도 없고, 또 독단적 처사를 감행하여도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개혁안을 제출했다.

    사원의 크기에 따라 반드시 주지에게는 소정의 월급을 주도록 하고, 또 유능하고 지혜 있는 적임자를 주지에 앉히려면 반드시 선거제도에 의하여 공명하게 선출하여야 한다.

    十五. 僧侶의 團結

    뭉치자.
    물질 : 불(쇠를 녹인다)이나 털( 모이면 천근만근 의 무게도 끈다)도 모여서 무엇인가 이룬다.
    마음도 없고 매우 미미한 것 들이지만 뭉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사람 : 아름다운 몸과 더 없이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모이면 무엇인들 이루려고 하면 못할것이 있겠는가. 하면된다.

    뭉치지 않으면.
    불 은 - 식은 재로 변하고
    티 럭 - 가는 티끌이 되며
    사람은 - 결국 이루는 것이 없다.

    이상하다. 뭉치는 일이면 괴이쩍다. 뭉치지 않음이며.승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단결사상 이라면 마음의 갈피를 못잡아 두려워하고 눈을치떠 슬퍼 하면서 불교를 위해 조심하고 우리 승려들을 위해 한탄해야 하겠다.

    단결. 단결하지 않고 성취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결에는 개인의 단결과 단체의 단결이 있다.
    개인의 단결이란 : 무수한 개체가 모여 한 사람을 이룬다.
    (인 이 비 설신 의)의 잘못.
    나무가지를 꺽을때.
    마음으로 기억하고, 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가고 손으로 잡고, 힘으로 이를 움직인 다음 가지는 꺽인다. 5개의 개체가 모여서 단체의 단결.
    하나가 안되면 둘이요, 둘이 안되면 셋이 된다.
    그래서 항해 하고니라.
    항해사, 기관사, 통신사, 임무는 다르나 목적은 같다.
    회사 - 근대경영의 합리성.

    단체의 단결은 두 종류.
    1. 외형적인 단결 - 시장사람들의 단결 - 도둑놈.
    2. 정신적인 단결.
    마음이 뭉치면 외국인과도 친구가 되고, 천리를 격한 사람끼리도 머리를 맞댈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정신적 단결를 존중하는 반면 외형적 단결에는 관대함이 없는 것이다.

    승려의 경우.
    한 절에서 생활하는 점에 있어서 외형적인 단결이나 정신적 단결이란 일찌기 소문도 들어 보지 못했다. 무슨일이고 하려들면 그 일의 가부와 도리의 득실은 논하지도 않은채 서로 시기 질투를 하여 배척하며 일이 동쪽에서 비방이 서쪽에서 일어나고 의론이 아침에 맞았으면 취지를 저녁에 달리하고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덤비듯 거역해서 하나도 이루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심하다. 뭉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왜 도리어 해치며, 방관하면 족할터인데 어찌해 도리어 시기함이랴.

    양계초의 글.
    <방관자를 꾸짖는 글> 사진 찍은 것 같다. ( )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고 천시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방관자니라. 팔장을 끼고 바라보는 자 --> 무슨 일이든 인류의 도둑이요, 세계의 원수임에 틀림없다.

    종류.
    1. 혼돈파(渾沌派): 사물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서 생사와 흥망에 무관한자. 예) 물에 놀던 고기가 잡히어 끓으려 하는 솥 속에 있으면서 오히려 물의 따스함이 봄철의 강물같다고 오해. 보금자리 안의 제비가 반쯤 불이 붙은 집에 있으면서 아직도 해가 나서 집을 비취는가 의심하는 격. 기계와 같이 움직이기는 하되 지각하지 못한다. 방관자이면서 자기가 방관자 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자. 승려의 10분의 9는 혼돈파다.

    2. 위아파(爲我派) 벼락이 쳐도 내 보따리를 찾는 자. 이 일은 한 대도 나에게 이로움이 없고 이 일을 안한대도 나에게 손해날 것이 없는 바에는 내가 어찌 고생과 모험으로 방관의 무사주의를 택하지 않기를 원할것이냐? 비유하면, 이가 입술을 무관하다고 하고, 토끼가 여우의 울음을 슬프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분수를 지키고 몸을 조심하는 자. 보물을 모으는 수전노는 다 이파다.

    3. 오호파(嗚呼派) 탄식하며 한숨짓고 통곡하며 눈물 흘리는 것으로 유일무이한 사업을 삼눈자. 얼굴-->근심, 입-->시대를 슬퍼한다. 그러나 해야할 일을 하라고 하면 「지당한 말씀이나 할 길이 없으니 어쩌랴.」하며 시대의 위망을 말하며. 이 파는 몇이나 될까.

    4. 소매파(笑罵派) 늘 남의 배후에 서서 비웃음 섞인 말과 뜨거운 욕설로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자. 자기뿐만 아니라 남도 방관자가 안 될 수 없게 만드는 자. 보수적이라고, 유신론자라고 다 욕하는 자.

    5. 포기파(暴棄派)

    6. 대시파(待時派)

    論僧侶之團體
    이 항목에서 한용운은 당시의 승려들을 가차없이 매도한다. 우선 조선 불교 유신을 도모하는 승려는 누구나 승려들에게 「단체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탄한다. 조선 승려만큼 독선적 이기주의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독선적 이기주의는 필연적으로 모든 사회적 움직임을 남의 일처럼「방관하는 위치」에서 만족하는 타성을 길러 낸다. <유신론>에서 한용운은 「천하에 가장 보기 싫고 미운 자는 방관자」라고 호통하면서, 이 방관자를 다음의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혼돈파(混沌派). 너무 무식하여, 그저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누워 자는 일뿐, 무엇이 어떻게 돌아서 되어 가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사실상 방관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들 자신이 방관자라는 사실도 전연 모르고 있다.
    둘째 위아파(爲我派). 남은 어찌 되는 조선불교는 어찌 되든 자기만 안전하면 그만 이라는 무리. 입술이 없으면 잇몸도 상한다는 가장 쉬운 이치도 모르고 사는 우둔한 무리다. 셋째 오호파(嗚呼派). 모든 일을 강 건너 불로 보고 이편에 앉아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는 무리.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불길은 이쪽으로 넘어와 자기 집을 불태운다. 그대로 앉아서 한숨만 쉬고 구경만 하는 가장 비겁한 무리다.
    넷째 소매파(笑罵派). 항상 뒤에서 남의 일을 비웃거나 조롱하는 무리.
    다섯째 포기파(暴棄派).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앉아서 구경만 일삼고 있는 무리.
    여섯째 대시파(待時派). 가만히 앉아서 때가 오기만 기다리는 무리. 그것은 씨나 뿌려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어리석은 무리를 가리킨다.

    論寺院統活?
    조선불교의 사무 절차나 의식에 통일성이 없다. 질서 있고 조리 있는 절차와 의식 규준이 마련되고 전 불교 사원과 사원 재산까지도 일률적으로 통괄하는 조직과 기구가 있어야 한다.

    이 밖에 결론이 있으나, 항목마다 결론적인 것을 내린 까닭에 <유신론>의 결론은 짧게 끝나고 있다. 약 四만 二천 자에 달하는 <유신론>의 대 논문은 조선 불교의 앞날에 유명한 마르틴 루터 같은 종교 개혁가가 나와 주기를 고대하면서 끝부분을 맺고 있다.

    先驅的인 宗敎理論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은 당시의 정치적 외적 정세와, 불교 내부의 완고한 보수성 때문에 불발탄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1930년 당시의 一, 조선불교의 전반에 걸쳐 다각적인 관찰과 비판을 가했다는 점.
    二, 전체 논문이 이론 정연하고 체계가 짜여 있다는 점.
    三, 그러면서도 정말 불교의 장래를 누구보다도 아끼는 종교적 정열에서 솟아 나온 산 글이라는 점.
    四, 당시로서는 개화된 문장체인 국한문 병용을 택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가장 선구적이고 혁명적인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당시 지적한 불교의 병폐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현실을 볼 때 이 「유신론」은 아직 그 생명이 살아 있다. 아마 한국 불교가 六一년대의 낡은 껍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한용운의 「유신론」은 가장 무섭고 날카로운 비판과 개혁의 화살로 한국 불교 승단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불교유신론>의 해제를 끝맺음에 있어, 그에 대한 비판 몇 가지를 들고자 한다. 「유신론」의 논조가,
    一, 극히 외형적 피상적으로만 승단의 병폐를 지적했다는 점.
    二, 따라서 불교 교리·사상의 근대적 해석이나 주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
    三, 급진적 유신에 조급하여, 종교 교단의 근본 원칙이 되는 계율의 해석과 개혁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점.
    四, 그리고 조선 불교의 통폐가, 호국(護國)을 가장한 승단이 역대 왕조와 야합한 사실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고,
    五, 도리어 승려의 독신생활을 왕권이나 일제 통감부의 무력(武力)에 의하여 막으려고 했다는 점.
    등은 아무래도 두고두고 신랄하게 비판받아야 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