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학교에서 4/4

「만해기념관 전시관람 및 해설」은 그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 수고도 수고려니와 그 하나하나에 담긴 만해의 모든 것을 정성으로 설명하는 전보삼 관장으로 인해 나의 감동감화는 배가 되었다.

만해 선양을 위해 저렇게 헌신하는 이유는 뭘까?

그의 가슴에 혼신의 애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 모인 사람들과 비교를 해본다. 일종의 시샘일까. 점점 더 만해의 사상과 시상에 가까이 가고 싶어진다. 지금은 당당하지 못해도 속히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어떻게 가까이 빨리 다가갈 수 있는가를 이리저리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의 동선은 기념관 출구에 이른다.

처음 들어올 때의 그 입구로 온 것인데 출구로 보이는 정경은 새삼 다른 세상이다.

내 시야가 달라져 있다는 건가!

모두에게서 잘 배우고 잘 깨쳤다는 만족스런 표정이 역역하다.

전병삼 관장이 일일이 악수를 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악수와 토닥임과 덕담은 그 자체가 「제23기만해학교」 수료식이다.

자유롭다. 끼리끼리 모여 사진도 찍고 격려와 작은 환호도 있다. 지각으로 인해 등록도 못하고 명찰도 못 받은 나와 아내는 쑥스럽고 어정쩡하다.

오랜만에 참교육을 받은 기분이다.

나아갈 길을 잃은 나에게 갈 길을 알려준 시간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아픈 채찍과 부끄러움이 파도치는 하루였지만 지금은 즐겁고 가볍고 기쁘다.

만해에 대한 짝사랑을 주제로 시를 지어보면 어떨까!

내 마음의 중심에 들어설 ‘님’을 그리는 시 말이다. 내 운명의 화두 같은, 희고 단단한 차돌맹이 같은 그런 차원 있는 시를 짓고 싶다.

“오늘이 시월구일이지?”

“응. 왜?”

“오늘의 학습과 감상을 수필로 잘 정리해 둘 생각이야. 만해를 짝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날이니 앞으로 시월구일이면 오늘의 마음가짐을 되짚어보면서 감사와 자성의 날로 삼으려고.”

“옆에 있는 사람부터 생각하시지.”

“왜! ‘님’으로 받들어 모실까?”

“됐네요.”

그냥 집으로 가면 오늘의 이 좋은 기분은 곧 구겨질 것 같다.

아내에게 박선자 시인과 김화영 시인에게 커피 대접하고 싶다고 말하라고 시키고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파란 하늘 뒤란에 계신 선각자들은 날 내려다보며 뭐라 하실까?

전보삼 관장을 만나면 물어보리라.

‘님’과 ‘스승’과 ‘사랑’은 같은 건가 다른 건가를.

‘님’으로 ‘스승’으로 못하고 그냥 짝사랑만 하기로 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아내가 생각 속 나를 톡 깨운다.

“좋아들 하셔. ‘님의 침묵’을 암송하신 여성분도 같이 오신데.”

“더욱 좋지.”

“‘만해시낭송회’건으로 이야기 할 게 있다고도 했어.”

“낭송은 관심 없는데.”

“‘아라비카’로 가자고 했어.”

“그냥 여기서 하지. 차타고 가야잖아.”

“5분이면 되는 데 뭘. 저쪽도 차가 있다며 좋다고 했어.”

우리 부부가 남한산성으로 드라이브 할 때마다 들리는 커피집이다. 비싸서 탈이지 커피의 향과 맛은 아주 좋다.

나는 카푸치노를 마시며 ‘만해시낭송회’건이던 아니던 만해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만해 짝사랑이 가동된 듯해서 좋다.

만해기념관에게 말을 건다.

남한산성이 알을 품 듯인 그런 명당에 네가 있구나!

안녕! 또 보자!

겨드랑이 사이로 깃털이 솟는다. 단단하고 옹골찬 깃털이다. 낡은 것을 힘차게 밀어 내고 있다.

새 깃털이다! 솟구치며 날아서 ‘님’있는 곳으로 가리라!